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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비가 온다더니 정말 비가 온다. 창문을 열었더니 봄 흙냄새가 훅 하고 9층까지 올라왔다. 어제 오늘은 시간을 이상하게 썼다. 해야할 일들이 산더미 같은데 서너 시간씩 낮잠을 잔 건 뭐 그렇다 치고, 낮잠 자고 일어나서 제일 집중력이 좋을 때에 반찬을 만들거나 TV를 봤다.

친구 아내가 저 세상으로 간 지 벌써 6년이 됐단다. 생일날이 제삿날과 같은 아름다운 여자의 기일을 맞아 친구며 친척들이 오늘 산소에 간다고 했다. 몇 일 전에 가겠노라고 말해 놓고 어제 저녁부터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가지 못했다. 낯선 사람들 속에 섞이는 것이 아직 어색하다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였다. 뭔가 아직 깔끔하지 않은 무언가가 남아 있는 것 같아서 계속 망설인 거였는데, 마침 오늘의 타로 카드도 15번 DEVIL이 나와서 더 망설이지 않고 불참 문자를 보냈다.

 

하루하루 과거를 여행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 외면하고 싶은 어떤 것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다.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두고 싶은 마음 뿐인데, 그 마음을 더큰 무엇인가가 지긋이 누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열흘째. 전체 여정의 1/4을 조금 넘게 걸었다. 왜 길을 떠났는지는 새까맣게 잊어먹은 채로 그냥 하루하루 무작정 걷고 있던 때였다. 3년 전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전날과 전전날의 과욕 때문에 나헤라(najera)에서 21km 떨어진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자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 까지 걷는 일은 힘들었다.

 

길을 걷다가 길 옆을 지나는 일군의 양떼를 발견했다. 이날 저녁 알베르게에서는 이 양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무리 중 한 마리가 새끼 양을 낳는 것을 많은 순례자가 목격했는데, 말 그대로 감동이었다고 한다. 저녁에 숙소에서는 주로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나눈다. 정치나 종교나 스포츠 이야기는 낄 데가 없다.

양들 옆으로 양치기와 개들이 걸어가고 있는 사진을 보니, 문득 며칠 전 라디오(그대와 여는 아침 김용신입니다)에서 들은 '양치기가 양떼를 모는 세 가지 방법'이 생각 난다. 먼저, 양치기가 앞장 서서 가는 것. 방향을 잡고 앞에서 길을 인도하면 그 뒤를 따라 양 떼들이 묵묵히 움직인다. 양치기의 지팡이는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이며 어둠을 밝혀주는 횃불 구실을 한다. 두번째, 양치기가 맨 뒤에서 가는 것. 양 떼들은 스스로 풀이 있는 곳을 향해 움직인다. 양치기는 뒤처지거나 길 잃은 양들을 지켜 주기만 하면 된다. 이때의 지팡이는 감시와 관리의 역할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양 떼의 한복판에서 가는 것. 인도자도 관리자도 아닌 동행자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양치기는 양 떼와 섞여서 함께 초원을 찾아가는데, 이 때 지팡이는 소통하는 전신주나 안테나 역할을 한다고 한다. 행복한 양치기가 되려면 양 떼의 무리 속에 있어야 하며, 그들의 눈빛을 읽고 그들의 냄새를 맡고 그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함께 움직여야 한단다. 백 마리의 양이 있어도 천 마리의 양이 있어도 모두 다 자기 옆에 양치기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양치기가 좋은 양치기라나 뭐라나.

 

한때 내 인생에도 칠 양이 몇 마리 주어진 줄 알았던 적이 있었다. 앞에서도 가보고 뒤에서도 가보고 가운데서도 가 보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해보기도 하고 별별 짓을 다한 끝에 최근에 내가 내린 결론은, 그냥 그날그날 서고 싶은 자리에 서는 게 제일 좋다는 것이다. 사실 맨 뒤에 가는 걸 선호하는 편이기는 한데, 그럴 때면 내가 과연 양치기인지 그냥 게으른 양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리고 아직 교만함이 살아 있어서, 양들이 나를 양치기가 아닌 게으르고 무능한 양 취급을 할 때는 발끈해서 '이것들아, 같이 놀아 주니까 내가 니네랑 같은 양인줄 아니? 이래뵈도 나는 양치기야!' 하고 싶어질 때가 많다. 따지고 보면 양이나 양치기나 무슨 큰 차이가 있다고.

 

여튼. 7시 30분에 나헤라를 출발해서 산토 도밍고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반이었다. 너무 피곤해서 알베르게 앞 작은 광장에서 잠시 쉬었다. 다른 순례자가 광장으로 오길래 담배를 얻어 피우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는 -이때쯤에는 낯선 사람들과 말을 섞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알베르게에 체크인했다.

산토도밍고는 오래된 마을이었던 것 같다. 알베르게도 사뭇 고풍스러웠던 기억이다. 체크인하고 침대를 정하자마자 씻으러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는 식탁에 사람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아는 사람도 있었고, 그날 처음 본 사람도 있었다. 엘렌, 디니, 노라, 로라, 알렉스, 레니, 진이 눈에 띄었다. 동독에서 온 다이아나와 홀거트 부부, 독일인인 티로, 그리고 몇몇이 더 있었다. 아이리시 펍에서 받은 빨간 모자를 쓰고 시끄럽게 떠들던 사람들을 피해서 밖으로 나갔다.

 

진과 함께 광장과 오래된 가게들, 성당을 둘러 보았다.

 

아래는 산토 도밍고의 파라도르 사진이다. 스페인의 국립 호텔 체인인 파라도르는 예전에는 궁전이나 수도원, 병원 등으로 쓰였다고 한다. 실내가 너무 궁금해서, 머뭇거리는 진을 끌고 안으로 쑥 들어갔다. 로비는 조용하고 넓었다.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마음껏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파라도르는 산토 도밍고 말고도 레온에도 있고 산티아고에도 있다고 했다. 순례가 끝나면 어느 도시에서건 꼭 한번 묵어주리라 마음 먹었다.

 

 

동네를 다 돌고 알베르게로 돌아가니 저녁 미사를 가는 파와 가지 않는 파로 나뉘어서 가자, 가지말고 계속 놀자 하며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음...한번 가볼까나.." 류의 말을 뱉어놓고 속으로 갈까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곧 부활절이니 성당에 가는 게 좋겠다며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식탁에 계속 앉아 있는데, 그날 숙소에서 만난 티로가 옆에서 말을 걸었다. "성당에 간다길래 같이 가려고 아까부터 여기 이렇게 서서 공손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왜 안 가?" 나는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당은 북적였다. 수많은 백인들 사이에서 나는 내가 아는 순례자와 모르는 사람을 구분할 수 없었다. 심지어, 성당에 같이 간 티로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다.

 

성당에서 나왔을 때, 티로가 다른 사람과 함께 아이리시 펍에 갈 건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어 왔다. 열 명 이상 모인 자리에서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들 알아듣는 척하며 앉아 있는 것보다 술집에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러자고 했다. 술집은 시끄러웠다. 맥주 두어잔을 마시고 일어섰다. 조용한 데서 술을 더 마시고 싶으면 그렇게 하자고 티로가 제안했다. 나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티로는, 내가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것처럼 보여서 한번 말해 본 거라고 했다. 시끄러운 것은 싫어하지만 조용한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사람 잠깐 보고 다 파악한 듯 말하는 게 싫었다. 우리 셋은 같이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는 시끄러웠다. 아는 사람이 점점더 많아질수록, 국적이 점점더 다양해질수록, 날이 갈수록 밤이면 밤마다 잔칫집 풍경이 연출됐다. 진과 나는, 다른 서양인들이 그전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뭔가 음식물을 제공할 생각으로 같이 숙소를 나서서 수퍼로 갔다. 각각 6유로를 내서 와인과 1유로짜리 피자, 또다른 안주를 샀다. 피자는 한마디로 쓰레기였다.

사실, 이 날이 내가 가게에서 물 말고 다른 것을 산 첫날이었다. 가게에 혼자 들어가면 얼어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 하나도 모르게 되기 때문에 애매한 시간에 배가 고파도 뭐하나 사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간 점심은 주로 길가에 있는 바에 들어가서 보까딜리오라고 부르는 샌드위치 비슷한 걸로 때웠고 저녁으로는 메뉴델디아를 먹었다.

 

식탁에 모여 앉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이야기 소재는 돌고 돌아서 나라별 유머를 하나씩 소개하는 시간이 왔다. 나는 쪽팔림을 무릅쓰고 살짝 야한 유머를 말했다.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다들 웃어 주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직업과 연락처를 서로 교환하게 되었다. 티로는 침술을 한다고 했다. 안마도 할 줄 아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잘 한다고 했다. 즉석에서 시범이 이뤄졌다. 머리부터 어깨, 등까지 구석구석 안마를 받았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손길은 섬세했다. 귓볼을 만질 때는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예수님은 간음하다 붙잡혀와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 짓지 마라."

오전에 성당에서 관련 내용을 듣는데, 문득 궁금해졌다. 혹자는 저 여인이 마리아 막달레나라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가? 몇년 전에 봤던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에서도 그렇게 설정돼 있기는 했다.

어쨌거나. 복음 말씀도 있고 하니, 오늘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모든 여인들에게 자비가 함께 하기를.

문제는 무엇을 일러 '죄'라고 하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다는 거다.

 

Posted by 微物의 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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