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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로를 보고 있으면 아라비안 나이트의 원작자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때로는 방대하고 심오했고 때로는 가볍고 유쾌했으며, 무엇보다도, 끝이 없었다.(솔직히, 살다살다 그렇게 말 많은 남자는 처음 봤다. 심지어 나보다 말이 많았다.) 전날, 프로미스타(fromista)로 가는 길에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유럽의 역사 이야기를 들었다. 자세한 내용은 다 까먹었다. 유럽의 부르주아지들이 러시아 혁명을 지원했고, 금본위 통화체제를 지키려던 세력과 바꾸려던 세력 간의 지난한 싸움이 있었으며, 이에 대항하는 새로운 실험들이 있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돈에 목매고 사는 현대인들을 비판할 때는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 사례를 예로 들었다. 튤립 한 송이에 몇천만원씩 했다나 어쨌다나. 튤립이 그냥 꽃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가격이 폭락했고 사람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했다.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기가 막힌 일이다. 요즘은 실제로 돈을 주고 받는 일은 거의 없고, 우리는 숫자로만 돈이 들고 나는 것을 인식한다. 그리고 또, 알고 보면, 실제로 주고 받는 돈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좀 그렇다. 튤립이 그냥 꽃인 것처럼 돈은 그냥 숫자가 적힌 종이다. 종이가 아니라 설사 값 나가는 금이나 다이아몬드라 한들, 내가 필요를 느끼지 않는 이상 그냥 좀 반짝이는 광물일 뿐이다. 물론, 돈이 없으면 먹을 것을 구할 수가 없다. 부디 정신을 놓지 말자. 먹을 것을 구할 수만 있다면 돈은 없어도 된다. (쓰고 보니 좀 슬프기는 하다. 지난 3년간 내가 먹은 음식의 1/3은 은인들에게 얻어 먹은 것이고 1/2은 은인들과 같이 먹다가 남은 것이기는 했다.)

 

3월 24일 수요일, 17일째 길을 걸으면서 전날의 역사와 경제와 정치 이야기를 이어갔다. 열을 내며 새로운 사회 시스템에 대한 독특한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티로는 전날 있었던 개인사는 다 잊은 것처럼 보였다. 얼떨결에 잠자리를 같이 한 다음 갑자기 친한 척 하거나 뾰족한 대책도 없이 무한 책임을 약속하거나 상대를 자기 사유재산처럼 여기는 남자들과는 여러 모로 달랐다. 그래서, 좋으면서도 서운했다. 같이 걸었던 다른 날들과 똑같이, 티로는 매사에 비판적이었고 가끔은 좀더 잔인했다.

다종다양한 연애 실패 사례와 본인의 경제 상황을 다른 때보다 길게 설명했고, 연애는 자기 계획에 없던 일이며, 누구와 어떤 약속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철칙이라며 선을 그었다.

가난하고 직업도 없고 대학도 나오지 않았고 과거 현재 미래 모든 것이 불투명한 서양 남자가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고 진지하게 들이대는 건 나로서도 바라지 않는 바였다. 어차피, 길이 끝나면 끝날 관계였다. 길어야 20일 남짓. 세속적인 계산을 끝낸 나는, 잘 알아 들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피차 불감청이나 고소원이다.

 

24일 사진이 몇장 안되는 것으로 봐서, 이날은 줄곧 같이 걸은 모양이다. 프로미스타의 호스텔에서 늑장을 부리던 우리는 12시가 되어서야 그곳을 나섰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걸으니 오래된 성당이 나왔다. 티로는 성당 앞에 서서 눈에 보이는 상징들을 설명해 주었다. 저 동상은, 저 창문은, 저 양식은... 미안하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성당 앞 바에 들어가서 타파스를 주문했다. 늘 오랜 시간에 걸쳐 정보를 탐색한 다음, 처음 보는 새로운 것을 시키는 티로의 시도는 한편 무모해 보였지만, 덕분에 그가 없었다면 평생 맛보지 못했을 수많은 스페인 토속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식당에서 나는 주로 토마토 스파게티를 시켰는데, 어느날은 티로가 핀잔을 했다. "isn't it boring?" 어디 가나 먹을 수 있는 뻔한 걸 왜 주구장창 먹는 거냐며, 비교를 해봐야 옛것과 새것 중 어떤 것이 내게 맞는지 알 수 있지 않겠냐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다음부터는 티로에게 주문을 일임하게 되었다. 이후에 혼자 걸어갈 때, 재료가 뭔지도 모르는 것들을 조심스럽게 주문하기 시작했는데 나쁘지 않았다. 

무언가를 주문하는 티로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유 없이 뿌듯해졌다. 동네 사람들. 늘 옆에서 가르치고 챙기고 대신해 주는 저 수수께끼 같은 남자한테 당시 제일 가까웠던 여자는 접니다.

 

티로는 늘 친절하지는 않았다. 아니, 사실 친절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말과 자세는 냉소적이고 비판적이고 부정적이었는데, 생각은 깊었고 행동에서는 다른 데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깊은 배려가 묻어나왔다. 가끔씩은 그간 만난 순례자들을 비난하기도 했고, -누구는 도움을 받고도 고마와하지 않는다, 누구는 이기적이다- 가끔씩은 나를 비난하기도 했으며, -말할 때 에너지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다, 대화에 성의가 없다, 노력하지 않는다- 가끔 자기가 했던 행동들을 설명할 때는 이유라고 말하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프로미스타에서 느지막히 출발했고 중간중간 충분히 쉬면서 걸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날 8시간 동안 19.3km 밖에 갈 수 없었다.(사실 이때쯤에는 하루 20km 걷기는 일도 아니었다. 이미 불덩어리가 된 발은 활활 타면서 잘도 버텨주었다.) 일주일 넘게 세트로 움직이고 있던 중이어서 사전에 양해를 구하지 않고 혼자 멈추거나 더 멀리 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녁 8시에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carrion de los condes)에 도착했다. 마을에 들어가기 전, 둘다 조금 멈칫거렸다. 알베르게로 가야 하나, 호스텔로 가야 하나. 어떤 대화를 나눈 끝에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디서 묵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날도 우리는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고 기록돼 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씻은 다음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술집으로 갔다. 불 켜진 여러 곳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신중히 비교한 끝에, 티로는 비교적 조용하고 비교적 쾌적하고 비교적 사람이 적은 곳으로 갔다.

 

이 곳에서 티로는 다른 때와 달리 내게 술을 주문하라고 했다. 그가 마시고 싶어 했던 술은 앱상트(Absinthe)라는 것으로, 나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왜 직접 주문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 술은 너무 독해서 몇몇 나라에서 금지하고 있고, 그 술을 시키면 대략 알콜 중독자로 보기 때문에 남자보다는 여자가 시키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가끔 티로는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여자인 네가 하는 게 더 유리하다"며 내게 미루었다. 어쨌거나, 찾는 술은 없었고 우리는 간단하게 맥주를 마시고 늦게까지 새로운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회사에서 나름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던 덕에, 내 생각은 아니었지만 동서 통합을 위한 키워드, 디자인, 지속가능성, 동북아의 미래 등등 경영진으로부터 전수 받았던 것들을 비교적 잘 전달해 줄 수 있었고, 티로도 나름 의미 있는 생각들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나 교육 시간에 귀에 못이 박히게 들으면서 "도대체 뭐하자는 거임?" 이라며 퉁퉁거렸던 것들을 유일무이한 대안인 듯 확신에 차서 영어로 설명하게 될 줄이야.

 

전날부터 걷는 데서 오는 피로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 날은 평소와 달리 일기를 길게 썼다.

사람 이름을 기억하는 데 잼병이라 수첩에 새로 만나는 사람들 이름을 기억나는 대로 계속 적어 가고 있었는데, 요근래 만난 순례자들에 대해서는 별 기록이 없었고, 이름을 봐도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관심이 한 곳으로 쏠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매일 당연한 듯 만나던 알렉스도 진도 수잔도 언제부터인지 보이지 않았다. 새 순례자들과는 일면식도 없고, 옛 순례자들과는 인연이 끊어진 거였다. 남은 날들이 문득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걷기 시작한 지 17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초를 다투던 회사의 현안들(영업일보, 신 가격 시스템)을 완전히 잊었다는 데도 생각이 미쳤다. 그때는 정말 시급히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의사 결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내 인생에서 별로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았던 거였다. 그렇다면 내게는 무엇이 제일로 중요하다는 것일까? 남은 인생을 어디에 바칠 것인가에 관한,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남은 길을 티로와 함께 걷든 혼자 걷든, 그 길이 끝나는 곳에는 지금보다 훨씬 강하고 훨씬 나은 내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크게 개의하지 않기로 했다.

까미노는 마치 여러 량이 연결된 기차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산티아고로 가는 완행 열차에 타고 있다. 유럽 대륙 전체가 거미줄 같은 철도망으로 연결돼 있다. 모든 기차는 출발점은 다르지만 종점은 같다. 그 열차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출발해서 마을들을 두루 거치며 산티아고로 우리를 실어나른다. 어떤 사람은 생장피드포르에서 열차를 탔고 어떤 사람은 루르드에서 열차에 올랐다. 그 기차는 전석이 입석이다. 긴 여행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칸에 있는 사람들은 어제 봤던 사람을 오늘도 볼 수 있다. 앞칸이나 뒤칸에 누가 탔는지 궁금하거나 같은 칸에 탄 사람이 정말 싫은 사람은 칸을 옮겨갈 수 있다. 부득이한 이유로 열차에서 내리게 되면, 영영 다시 만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차는 출발한다. 오늘 아침에도 수많은 순례자들이 설레는 마음을 안고 처음 기차에 올랐을 것이다. 한 기차 안에 있는 한, 노력하면 만날 수 있다. 조금 빨리 걸으면 앞서 간 샤나를 만날 수 있고 조금 천천히 걸으면 뒤에서 오고 있는 알렉스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속도가 다른 둘을 같은 날 동시에 만날 수는 없다. 길에서 만났던 모든 순례자들이 무사히 완주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은 3월 28일. 한번 벌어진 시간의 틈은 여간해서 좁혀지지 않는다. 과거가 열심히 현재를 쫓아가고 있는 동안 현재는 현재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순례자를 따라잡는 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던 기억이 난다.

순간의 선택으로 생겨난 간발의 차이 때문에 그리운 사람을 지척에 놓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평생 못만나게 될 수도 있다. 잠시 우울해진다. 그렇지만,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아무리 그리워하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안되는 일은 안 된다. 아무리 해도 절대로 안될 일이었는지, 결국에는 일이 그렇게 되려고 그랬는지는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다. 슬픈 일이지만, 그저 흘러가도록 두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저께(26일)에 융기안 타로 스터디 뒤풀이에서 주고받았던 상처들 때문에 아직도 개운치가 않다. 나는, 티로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당신들을 위해서" 그랬다고 말하고 싶다. 그때의 티로가 진심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내가 이해하게 됐던 것처럼, 당신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아니어도 하는 수 없다. 순간의 진심도 진심은 진심이다. 평화가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Posted by 微物의 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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