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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며칠 열심히 따라잡으려 했지만 역시. 기운 딸리는 일이었다. 3월 29일 레온에서부터 매일매일 조금씩 전진해서 산티아고까지, 그리고 산티아고에서 피네스테레로, 피네스테레에서 다시 산티아고로 걸어 가는 어느 지점, 4월 중순의 어느 날까지의 일기는 거의 매일 똑같다.

 

오늘은 2013년 4월 11일. 전날 한차례 푸닥거리를 끝내고 낮잠을 7시간 반을 잔 덕분에 밤을 꼴딱 샜다. 2010년 4월 10일에 어디 있었나 수첩을 찾아보니. 그날은 마침 산티아고로 들어가는 날이었다. 벌써 그렇게 됐구나. 프랑스와 체코를 오가며 사는 여행자와 5일을 시시덕거리며 지내는 동안. 추스리고 일상에 몰두하는 동안. 모처럼 사방에 신경질을 뿌려 대는 동안. 어제는 광분해서 퍼붓느라고 오후에는 거의 기절 상태에서 잠에 들었다.

 

앞으로 당분간은 말을 더 보태지 않겠다. 수첩에 있는 키워드들만 문장으로 만들어 옮겨 놓기로.

 

2010년 3월 29일 월요일-아는 순례자가 아무도 없는 작은 마을인 호스피탈 데 오르비고(hospital de orbigo)에서 자전거쟁이 남자 다섯과 한 방에 잠.

죽자고 걸어서 33km나 왔다. 대인기피증인 것 같다. 아는 순례자들을 만날까봐 땅만 보고 걸었다.

밥 먹을 때 테이블에 왼팔 얹지 말기. 돈데 에스따 엘 까미노? 하루종일 죽어라 연습해도 안되는 스페인 r 발음. 연습이 부족해서 안되는 거라며. 해도 안된다 이 자식아.

(종일을 그렇게 티로가 남긴 흔적과 함께 걸었다.)

내일도 멀리멀리 가야지. 까미노가 덜컥 끝나면 하루 종일 뭐하고 사나. 화살표도 없는 곳에서.

*not being organized. 앞으로 견지할 자세.

*purpose of life. 나는 뭐를 하겠다고 세상에 나온 걸까.  

음식을 남기게 될 때마다 티로가 생각난다. 곧바로 돌아온 습관.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지 않고 스파게티를 시킨 게 잘못이다. 빌어먹을 썸머 타임.(레온에 들어간 날, 그 유명하다는 레온 성당에서 그 유명하다는 미사를 구경하려고 했었는데 하필 3월 28일부터 썸머 타임이 시작돼서 놓쳤다.)

이렇게 꾸역꾸역 먹어대니 하루에 30키로를 걷는들 살이 빠지겠나. 와인도 혼자 마시니 맛대가리가 하나도 없다.

길에서 신디를 만났다. 생각이 깊고 밝은 여자였다. 오늘 출발했다고 했으니 잘하면 20키로쯤 걸었겠다.

다섯 바이커와 바에서 술을 마셨다.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았다. 한 바이커가 라바날 델 어쩌고 하는 데 가면 그레고리안 성가가 유명하다고 수첩에 메모해 주었다. 디저트로는 나틸라스?(natillas)를 꼭 먹어 보라고 한다. 바닐라 크림이란다.

 

사진을 올리려고 보니 또 말을 보태고 싶다. 참자. 잊어먹지 않기 위해 캡션만. 곧 나가야 할 시간이다.

 

전날 묵은 레온의 알베르게 입구. 새벽에 나서면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유서가 깊다지.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레온 성당. 전날 저길 갔었어야 해.

 

앞에 디니와 엘렌이 걸어간다. 마주치기 싫어서 걷는 속도를 급히 늦추었다.

 

레온의 파라도르. 수도원이었나 병원이었나 궁전이었나. 셋 중 하나였는데.

 

 

저 멀리 길건너 표지판에는 산티아고까지 도로로 324km 남았다고 써 있다. 어느새.

 

누히 말하지만 극단적으로 맑다가 극단적으로 흐려지면서 하늘이 점점 세를 넓혀가는 흐린 부분과 여전히 맑은 부분으로 딱 쪼개지던 그날은 이 사진에서 먹구름 색이 제일 짙은 부분보다 더 시커맸더랬다. 너무 경황이 없어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던 것이 천추의 한이다.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었던 곳부터 순식간에 몰려오기 시작했던 먹구름은,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는 데 걸렸을 시간보다 훨씬 짧았을 것 같다.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사람은 아마도 믿지 못할 것이다.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 다리 아래 흐르는 강 이름이 오르비고인가 보다.  

 

Posted by 微物의 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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