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몇 년이 지나 새로운 마음으로 블로그에 들어올 때마다 참담하다. 

지난 이야기들을 왜 이렇게 힘겹게 써 내려가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고서는 글을 이을 수 없다. 

 

이 땅에 왜 왔는지 기억하는 것, 어떤 때 마음껏 행복했었는지 기억하는 것, 힘들었던 시간들은 어떻게 건너 와서 지금 웃고 있는지 기억하는 것. '기억'은 내 삶의 화두다. 

그런데, 그러니, 그래서인지, 나는 기억력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기억해야 할 것들은 기억으로 남지 않고 기억하려고 노력한 적 없는 의외의 것들만 기억 창고에 수북하다. 

그래서 나중에 나중에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항상 뭔가를 남겨야 한다. 

그런데 나는 '선행과제 선결 편집증'이 있다. 먼저 들어온 것들을 먼저 내보내야 하는 일종의 선입선출이랄까. 

7년 전 이야기를 지금도 쓰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딱한 일이다.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겠지만, 죽을 때까지 지나온 일들을 기억하고 기록한답시고 띄엄띄엄 쓰다가 '오늘' 한번 제대로 못 살아보고 생을 마감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한숨이 나온다. 

 

2010년 4월 7일, 31일째 되는 날이다. 

메르카도이로의 알베르게에서 안내문을 보니, 적당한 거리의 난방 되는 알베르게를 가려면 26km 이상을 걸어야 했다. 26km를 걷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뒤에 있을 것이 확실한 티로를 생각하면, 길을 서둘러 갈 이유가 없었다. 포르토마린에서 은행도 가고, 우체국도 가고 시간을 보내다가 가까운 곳에서 멈추기로 했다. 

 

길 위에서 한 달이 넘었건만, 자연의 경이로움은 여전하다. 나는 해가 뜨기 전의 차갑고 푸른 색을 좋아한다. 한참을 멈춰서서 짙은 색 하늘이 옅어지는 순간을 즐겼다. 

 

포르토마린에 호수가 있다던가? 그래서 그런지 드라이아이스 같은 구름이 얕은 골짜기에 그득그득 담겨서 이리로 저리로 흐르고 있었다. 

 

 

 

포르토마린은 큰 곳이었다. 도시 입구를 들어설 때 '아 예쁘다!' 했었는데 보시다시피 사진은 이렇다. 꽤 유명한 휴양도시라는데 심하게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도심의 인터넷 까페에 들어가서 티로에게 내 계획을 설명하는 메일을 쓰는데, 한심했다. 이렇게 하기로 했다가 저렇게 하기로 했는데, 일이 이렇게 돼서 결국 어떻게..  하고 쓰다 보니, 이랬다저랬다 하지 말고 결론만 말하라며 꾸짖던 티로가 옆에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너는 어쩌면 그렇게 늘 신중하니?" 라고 물었을 때 티로는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나도 마음 속은 복잡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랬다저랬다 한다고. 그래서 확실히 생각을 정할 때까지는 말을 하지 않아. 그리고, 일단 말을 하면 그걸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야." 라고 말했었던 것이 문득 기억난다. 

 

이 날은 짧게 걸었지만 많은 역동이 일어났다. 

포르토마린을 나와서 한동안 혼자 걸었다. 높지 않은 언덕 몇 개를 지난 것 같다. 

길에서 쟝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영어가 서툴러서 단어들만 몇 개 나열하는 식이었지만, 나는 그가 보르도에서 왔고, 71세라는 것 등을 알 수 있었다. 대화가 잘 안 되는 사람과 속도를 맞춰서 걷는 것은 고달픈 일이다. 걸음이 느리면 그만큼 걸어야 할 시간이 늘어나서 더 그렇다. 

한동안 같이 걷다가 드디어 장 할아버지가 먼저 가라며 손짓을 했다. 나는 느리게 걷는다고 걸었는데, 할아버지한테는 힘에 부친 것 같았다. 잘됐다 싶어서 작별인사를 하며 껴안는데, 살짝 입냄새가 났다. 재빨리 떨어지려는데 쟝 할아버지가 메르시...꼼빠냐.. 하며 그나마 알아 들을 수 있는 프랑스 말로 인사를 했다. 동반자? 같이 걸어줘서 고맙다는 거 같았다. 

할아버지와 헤어져서는 원래의 내 속도대로 길을 걷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같이 걸어준 게 뭐가 고맙다고... 그깟 게 뭐라고 그거 하나 못 해 주고 내쳐 앞질러 온 건지. 

앞으로 평생 볼 일도 없는 분인데. 다시 기억하게 될 때는 이미 이 세상 분이 아닐 수도 있는데. 

그 때는 미안했어요, 할아버지. 

 

그리고 그 날 이후 지금까지, 나는 앞에 어르신이 걸어가시면 앞지르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쟝 할아버지와 헤어져서 걷는데, 앞에도 뒤에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새삼 쓸쓸했다. 어차피 혼자 걷기로 하고 간 길인데, 기분이 묘했다. 

9시부터 걷기 시작해서 짧게 17~18km 정도를 걷고 오후 4시에 일찌감치 벤타스 데 나론에 도착했다. 

하필 그 날 묵은 알베르게에는 컴퓨터도 없었고 전화도 없었다. 

로자와 그 마을에서 만나기로 했던 것 같다. 마을에 알베르게는 단 두 개이고 그나마 난방이 되는 곳은 내가 묵은 곳인데, 늦도록 로자는 오지 않았다. 

까미노의 순례자들은 서로 만나서 어떤 약속을 했더라도 서로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보자' 라고 약속해 놓고 거기서 못 만나게 되더라도 별로 화가 나지 않는다. 수많은 가능성과 변수들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다치지 않았기를, 병나지 않았기를 조용히 바랄 뿐이다. 

 

벤타스 데 나론의 알베르게에는 밤 9시가 될 때까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마도 혼자 있었던 것 같다. 

그 날의 수첩은 "산티아고가 무섭다. 못 가겠다. 두려움을 떨치고 조금씩, 조심스럽게" 로 끝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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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젠장. 

 

한 걸음 한 걸음씩, 우리는 나아간다. 

pas a pas, se va luen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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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젠장. 

라비린토스를 읽던 어느 날에도, 2019년이 된 지금도. 

한 걸음 한 걸음씩 우리는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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