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이 책은 한번 더 봐야겠다. 그럴 수 있을까? 그나저나 꼭 그래야 할까?

참, 뭐라고 말하기 힘든 책이다.

몇 년 전에 읽었던 그의 책 몇 개, 그 시절에 같이 읽었던 한국 여자 작가들의 책 몇 개와는 좀 다르다. 그 책들은.. 한 마디로.. 짜증 작렬이었다.

이 소설집도 사실 좀 짜증스럽기는 하다. 그런데 종류가 좀 다르다. 그 때의 짜증은 무슨 말 하는지 뻔히 아는 와중에,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고 울컥 올라오는 짜증이었는데, 이건 좀.. 사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잘 몰라서 치밀어 오르는 짜증이다.

그래서 한번 더 봐야 하나, 다시 봐도 여전히 잘 모르겠으면 더 짜증스럽지나 않을까 뭐 그런 짜증스러운 고민을 하게 한다.

어디 보자.. 그 와중에 접어 놓은 페이지가 몇 개 있으니 한번 볼까.

 

의심을 찬양함 :

아, 여기는 전체 내용과 관계 없이 관심을 끄는 것들이 몇 개 있었다. 것도 새로워서가 아니라, 내가 생각한 것들이 잘 정리가 돼 있어서. 그나마 이 소설이 맨 앞에 있어서 끝까지 참고 읽었건만. 말하자면 아래와 같은 것들?

 

인간이 가진 오감과 뇌의 용량을 생각해 보세요. 의식하든 못하든 우리가 일상에서 제공받는 정보는 엄청난 양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는 것을 모두 기억한다면 삶을 통제할 수가 없겠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사고회로에 적합한 것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기억의 질서예요. 일종의 판단매뉴얼인 셈이죠. 그런데 그 매뉴얼이 즉히 주관적이고 부분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어요. 매뉴얼로 해석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인간은 대개 우연이라는 말로 뭉뚱그려버리지만, 사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법이에요. 그 인과관계를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기존 매뉴얼의 질서에 적합하지 않아 누락되어 있었던 것 뿐이죠.

 

접어 놓은 페이지들을 보다 보니 더욱 짜증스럽다. 얘기를 할 듯 하다가 무슨 말인지 모르게 끝내 버린 6편의 단편이 다시 생각났기 때문이다. 내 이해력이 떨어져서인가? 몇몇 리뷰들을 봤더니 반 이상은 내 느낌과 비슷한 거 같기는 하더만.

다시 읽거나, 이대로 묻히거나 둘 중 하나겠군. 아 짜증나.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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