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one took my bike without saying anything. i pray for him/her and my bike.

 

2009년 3월 말에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왔다. 서울역에서 산 작고 까만 접이식 자전거와 함께. 귀신이 씌였는지, 잠시 집에 드나들던 친구한테 덜컥 그 자전거를 주었다. 막상 자전거가 있다 없으니 답답했다. 그 해 가을쯤, 양재천변에 있는 러너스클럽(http://www.runnersclub.com/)에 가서 눈에 띄는 걸로 하나 골랐다. 대만 자전거 브랜드 GIANT 라고 했다. 자전거를 사고 가을이 왔고 겨울이 왔고 봄이 오도록 그 자전거는 보관소에 곱게 모셔져 있었다.

 

2010년 8월, 그렇게 서 있기만 하던 자전거를 타고 처음 간 곳은 우면동 성당이었다. 무심코 자물쇠를 채우면서 아차, 싶었는데, 역시나.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는 바람에 두어시간을 땡볕에서 낑낑거려야 했다.

 

생각해보면, 2010년 여름부터 11월 말까지가 가장 피크였다. 집에서 6km 떨어진 곳에 있던 영어학원을 갈 때도, 집에서 4km 떨어진 단전호흡 수련원을 갈 때도 곧잘 씽씽 잘 달렸다. 한여름 땡볕에도 비가 와도 으슬으슬 추워도 웬만하면 자전거를 끌고 다녔다.

어떤 날은 바람 빠진 타이어에 어떻게 바람을 넣을 것인가를 가지고 커피숍 총각 셋과 전집 아주머니까지 다섯명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기도 했고(결국, 중요한 건 지혜도 경험도 아니고 힘과 속도였다)

 

또 어떤 날은 혼자서 인형놀이를 하고 있을  먼발치서 나를 기다려주기도 했다.

 

겸손한 크기, 딱 내 수준에서 조절 가능한 단순한 기능들이 몹시도 고마웠다.

 

이렇게 훌쩍 떠나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 대만에서 온 영국인 바이커 마크랑 양재천을 달릴 때도, 나는 자전거를 버리지 않을 테니까 자전거도 나를 버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집에 있는 기구로는 바람을 넣을 수가 없어서 누리바이크라는 이름의 동네 자전거포에 갔었다. 거기 온 손님이 내 자전거를 보더니 안타까와하며 말을 보탰다.

"아.. 그 자전거.. 생활 자전거로 막 쓰기에는 아까운.. 정말 좋은 자전건데..."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아서 어느날은 5000원을 주고 체인에 기름을 쳤다. 그리고 양재천에 앉아 있는데 구석구석 먼지낀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뭐, 안장은 깨끗하잖아? 내가 계속 이용한다는 증거지. 좀 더럽지만, 그러니까 별로 안 좋은 자전거처럼 보여서 누가 말없이 가져갈 가능성도 적을 거야'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자전거를 믿고 승용차는 지금까지보다 더욱더 사용하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는데, 2012년 6월 18일 밤에 누가 말없이 이 자전거를 가져갔다.

아침에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섰었는데, 한낮 땡볕에 집에 들러서 자전거 놓고 나오기가 좀 귀찮아서 사거리 기둥에 매 놓고 볼일 보러 갔다가 막판에 술을 너무 먹는 바람에 취해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집에 들어간 날 밤이었다. 새벽에 눈뜨자마자 길가로 달려나갔지만 이미 자전거는 없어진 뒤였다. 다시 미친 듯이 집으로 달려갔다. (밤에 술김에 자전거 보관소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렇지만 거기도 자전거는 없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자전거 하나도 마음 놓고 길에 못 세워두는 각박한 나라인가 싶었다.

 

돈을 들여서 새 자전거를 살 형편이 아니라서 여기저기 물어서 자전거를 하나 얻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타고 다니려고 어제는 자전거포에 가서 바구니도 붙이고 전구도 사서 달았다. 오늘은 시운전도 했다.

새 님과 마음 놓고 사이 좋게 지내려면 가시는 님한테 인사는 제대로 해야 할 거 같아서 사진 파일들을 뒤져 보니까 여기저기서 찍은 사진들이 꽤 있었다. 아, 내가 저 자전거를 정말 좋아했었구나 싶었다.  

처음에는 말없이 가져간 사람이 너무 미웠는데, 시간이 갈수록 원망도 줄었다. 나의 불찰도 있었고, 정말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상상하기로 했다. 그냥, 자전거한테 미안하다. 남의 상심한 마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새 주인이 자전거에 얼마나 신경을 쓸지 모르겠다. 하긴. 아무려면 나만큼 방치하겠나 싶기도 하다.

아무리 정이 많이 들었어도 평생 같이 있을 수는 없는 거니까. 

내가 어디에 있든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나를 지켜주던 내 사랑하는 자전거야.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한 때에도, 내 힘들었던 시간 동안에도 어두운 보관소에서 말없이 기다렸다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나를 싣고 씽씽 잘 달려 주었던 나의 자전거야. 같이 있어 주어서 그동안 고마웠다.

 

여러분. 일동제약 사거리(교육개발원 입구)에 자전거 노숙시키지 마세요. 누가 말없이 기약없이 집어가 버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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