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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one took my bike without saying anything. i pray for him/her and my bike.

 

2009년 3월 말에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왔다. 서울역에서 산 작고 까만 접이식 자전거와 함께. 귀신이 씌였는지, 잠시 집에 드나들던 친구한테 덜컥 그 자전거를 주었다. 막상 자전거가 있다 없으니 답답했다. 그 해 가을쯤, 양재천변에 있는 러너스클럽(http://www.runnersclub.com/)에 가서 눈에 띄는 걸로 하나 골랐다. 대만 자전거 브랜드 GIANT 라고 했다. 자전거를 사고 가을이 왔고 겨울이 왔고 봄이 오도록 그 자전거는 보관소에 곱게 모셔져 있었다.

 

2010년 8월, 그렇게 서 있기만 하던 자전거를 타고 처음 간 곳은 우면동 성당이었다. 무심코 자물쇠를 채우면서 아차, 싶었는데, 역시나.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는 바람에 두어시간을 땡볕에서 낑낑거려야 했다.

 

생각해보면, 2010년 여름부터 11월 말까지가 가장 피크였다. 집에서 6km 떨어진 곳에 있던 영어학원을 갈 때도, 집에서 4km 떨어진 단전호흡 수련원을 갈 때도 곧잘 씽씽 잘 달렸다. 한여름 땡볕에도 비가 와도 으슬으슬 추워도 웬만하면 자전거를 끌고 다녔다.

어떤 날은 바람 빠진 타이어에 어떻게 바람을 넣을 것인가를 가지고 커피숍 총각 셋과 전집 아주머니까지 다섯명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기도 했고(결국, 중요한 건 지혜도 경험도 아니고 힘과 속도였다)

 

또 어떤 날은 혼자서 인형놀이를 하고 있을  먼발치서 나를 기다려주기도 했다.

 

겸손한 크기, 딱 내 수준에서 조절 가능한 단순한 기능들이 몹시도 고마웠다.

 

이렇게 훌쩍 떠나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 대만에서 온 영국인 바이커 마크랑 양재천을 달릴 때도, 나는 자전거를 버리지 않을 테니까 자전거도 나를 버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집에 있는 기구로는 바람을 넣을 수가 없어서 누리바이크라는 이름의 동네 자전거포에 갔었다. 거기 온 손님이 내 자전거를 보더니 안타까와하며 말을 보탰다.

"아.. 그 자전거.. 생활 자전거로 막 쓰기에는 아까운.. 정말 좋은 자전건데..."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아서 어느날은 5000원을 주고 체인에 기름을 쳤다. 그리고 양재천에 앉아 있는데 구석구석 먼지낀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뭐, 안장은 깨끗하잖아? 내가 계속 이용한다는 증거지. 좀 더럽지만, 그러니까 별로 안 좋은 자전거처럼 보여서 누가 말없이 가져갈 가능성도 적을 거야'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자전거를 믿고 승용차는 지금까지보다 더욱더 사용하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는데, 2012년 6월 18일 밤에 누가 말없이 이 자전거를 가져갔다.

아침에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섰었는데, 한낮 땡볕에 집에 들러서 자전거 놓고 나오기가 좀 귀찮아서 사거리 기둥에 매 놓고 볼일 보러 갔다가 막판에 술을 너무 먹는 바람에 취해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집에 들어간 날 밤이었다. 새벽에 눈뜨자마자 길가로 달려나갔지만 이미 자전거는 없어진 뒤였다. 다시 미친 듯이 집으로 달려갔다. (밤에 술김에 자전거 보관소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렇지만 거기도 자전거는 없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자전거 하나도 마음 놓고 길에 못 세워두는 각박한 나라인가 싶었다.

 

돈을 들여서 새 자전거를 살 형편이 아니라서 여기저기 물어서 자전거를 하나 얻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타고 다니려고 어제는 자전거포에 가서 바구니도 붙이고 전구도 사서 달았다. 오늘은 시운전도 했다.

새 님과 마음 놓고 사이 좋게 지내려면 가시는 님한테 인사는 제대로 해야 할 거 같아서 사진 파일들을 뒤져 보니까 여기저기서 찍은 사진들이 꽤 있었다. 아, 내가 저 자전거를 정말 좋아했었구나 싶었다.  

처음에는 말없이 가져간 사람이 너무 미웠는데, 시간이 갈수록 원망도 줄었다. 나의 불찰도 있었고, 정말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상상하기로 했다. 그냥, 자전거한테 미안하다. 남의 상심한 마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새 주인이 자전거에 얼마나 신경을 쓸지 모르겠다. 하긴. 아무려면 나만큼 방치하겠나 싶기도 하다.

아무리 정이 많이 들었어도 평생 같이 있을 수는 없는 거니까. 

내가 어디에 있든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나를 지켜주던 내 사랑하는 자전거야.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한 때에도, 내 힘들었던 시간 동안에도 어두운 보관소에서 말없이 기다렸다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나를 싣고 씽씽 잘 달려 주었던 나의 자전거야. 같이 있어 주어서 그동안 고마웠다.

 

여러분. 일동제약 사거리(교육개발원 입구)에 자전거 노숙시키지 마세요. 누가 말없이 기약없이 집어가 버리십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1동 | 서울 서초구 양재동 90 #논현로27길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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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微物의 숨소리

컬러풀, 데인저러스 메소드와 함께 조울증자에게 용하다는 기사를 본 터라, 합숙 교육 끝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친구와 함께 극장으로 갔다.

100% 몰입하게 하는 완전히 훌륭한 영화였다. 할 말은 많지만, 시간이 없는 관계로 일단 교육 기간 동안 있었던 일들과 멜랑콜리아를 엮어서 쓴 글을 긁어서 그냥 붙이려고 한다. 영화를 같이 본 친구 말이, 감독인 라스 폰 트리에는 우울증 전력이 있는데, 이전에 만든 영화들보다 많이 정제된 것 같다고 한다. 그전 영화들은 좀 그랬다고. 

어쩐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담담하고 적나라할 수는 없을 듯.

 

아래는 가입해 있는 타로 카페에 쓴 글. 그날그날 카드를 열어서 미리 예측을 한 다음, 저녁에 하루를 돌아보면서 예측의 정확도를 맞춰보고 있다. 예수살이 교육을 마치고 나서 바로 멜랑콜리아를 본 다음날 아침에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카페에 긴 글을 올렸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매주 일요일은 물론 평일에도 주 2-3번씩 성당에 나가고 있으며 천주교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교육에도 아주 만족하고, 교육 기간 중에 선량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돼서 기뻤다.

 

--------------------

 

6월부터 살짝살짝 아침에 카드를 열었다가 저녁에 정리를 하고 있죠.

어찌어찌 3박 4일 교육을 가게 됐는데, 거기가 천주교에서 진행하는 거라서(하하!) 타로 카드를 가져가면 안 될 거 같아서 음..어떻게 하나..생각하다가 교육 들어가는 날 아침에 4일치와 전체 운을 미리 열어서 간단히 예측을 정리해 놓고 교육 갔다가 어제 왔습니다.

그 예측대로만은 안 될라고 아둥바둥 기를 썼지만 세상은 역시..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겠지만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랑은 정반대로 돌아가죠. 

 

카드는

7일 교황, 검의 기사, 검 3
8일 심판, 검의 여왕, 검 10
9일 황제, 펜타클 왕, 검 4
10일 연인, 완즈 왕, 완즈 6
종합 별, 검의 왕, 검 5

 

교육 전에 적은 한 줄짜리 초간단 예측 : "칼이 난무하는.. 뭔가 대단한 이론을 가져올라나? 결국 지나? 그러나 반짝반짝 빛나는."

교육관에 들어서면서 '쥐뿔 아는 것도 없는 내가 논리를 칼처럼 휘둘러 봤자 피차 상처만 주게 되니 말을 아끼고 조용히 있다 오자'는 아름다운 삶의 태도를 견지하려고 하였으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극적 반전을 거듭한 끝에.. 미리 열어 본 대로 된 거 같습니다.  

 

연인 카드는 잘 예측이 안됐지만, 일단 교황 심판 황제 카드가 좀 심하게 센 거 같아서 정말로 정말로 겸손 모드로 가려고 마음을 정하였으나. 농담 아니라 교육 기간 내내 진짜 재수 없게 굴게 되었습니다.(다들 어찌나 신심들이 깊으시고 착하신지, 저도 모르게 자꾸 삐뚤어지더라는.)

급기야 한 분으로부터 "자기는 교리를 도대체 누구한테 배웠어?"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칼 10개를 꽂아주신 분으로 당첨.

셋째날에는 자포자기하여 될대로 되라, 각자 살고 싶은 대로 살자 모드로 가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걸 또 밤에 있었던 고백성사 시간에 신부님이 콕 집어 내는 거죠. "자기 안에 벽을 쌓고 있어요...브라브라브라... --" 검 4 당첨.

네쨋날까지 서로들 조금씩 신경 거슬리게 하는 모드는 이어졌죠. 1:多(피교육생&진행&성경&찬송가) 다구리 모드로. 물론 저는 끝까지 저항하면서. 예를 들자면 마지막날 교육의 모토를 담은 성경문구는

"나는 세상 끝날까지 항상 그대들과 함께 있습니다" 였는데, 거기 대한 저의 답문은 "같이 있어 준다고 했지 도와 준다고는 안했다"(정범균 버전) 뭐 이런 식으로.

 

예수님 닮기 하나도 안 어렵네, 어른들한테 싸가지 없이 한 건 쫌 미안한데... 뭐 등등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교육을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진행자가 오더니 제가 동기 부대표로 뽑혔다고 하더군요.(동기 대표단을 동기들이 뽑는 게 아니고 진행자들이 뽑는 이런 전대미문의 똥같은 경우를 보셨나요?) 정말 진지하고 강경하게 "저는 개인 사정으로 맡을 수 없습니다.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고 믿음도 없습니다. 딱 5분만 생각할 기회를 주세요." 하고 말하고 있는데 앞에 선 신부님이 대표단을 뽑았고 본인들의 동의를 구했다, 누구누구다, 하고 이름을 확 불러 버리는 거죠. 이 상황에서 마음이 시키는 대로 "저는 동의한 적 없는데요" 하고 마지막으로 찬물을 확 끼얹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성적으로 '그래도 신부님인데 사람들 앞에서 무안을 주면 안되지' 를 선택해 버렸습니다. 젠장, 이게 연인 카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육 전에 열어서 본 카드들이 빙글빙글 맴돌더군요.

타이어도 몇년만에 한번씩 앞뒤좌우를 갈아줘야 하는 것처럼 저도 반생 동안 썼던 것들은 쉬게 하고 쉬던 것들을 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숨소리도 조심하면서 살려고 하는 저한테 이렇게 비수를 스물 다섯개나 내리 꽂으시다니.

왜 이러세요.. 저한테 왜 이러세요..정말 왜 이러세요... 하다가 나중에는 버럭 "정말 저한테 자꾸 왜 이러시는 거예요?" 하게 되더라구요.

 

교육 끝나고 나서 미리 예매해 두었던 영화를 봤죠. 제목은 멜랑콜리아.

이제 곧 내릴 거고, 본 사람도 많이 없을 거라서 간단하게 내용을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멜랑콜리아는 저 멀리서 아름답게 빛나는, 붉은 색을 띄었다가 푸른 색이 되기도 하고,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도 하는 별(아마도 혜성?)의 이름이죠. 

각종 이론과 계산에 밝은 과학자들은 그 별이 지구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갈 거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천체망원경으로 우주 쇼를 즐기다가 나중에는 불안해 하다가 다 죽습니다. 멜랑콜리아가 지구에 와서는 콩 하고 받거든요.  

 

3박 4일 동안 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언제나 그랬기는 했지만, 개인 사정상 잠시 까먹고 있었는데, 잘 살려고 애쓰면 애쓸 수록 참혹한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

제가 원래 굉장히 무례하고 욕도 잘하거든요. 그래서 웬만하면 사람들도 안 만나고 만나게 되더라도 꼭 필요한 말만 하려고 하는데 그걸 좀 참으면서 나름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했더니 이렇게 됐습니다.  

그냥 생긴 대로 사는 게 저한테는 맞는 거 같습니다.

이제와서 후회해 봤자 소용도 없지만.. 타로 카드를 가져갈 걸 그랬어요.........

 

길 잃은 어린 양 하나 어떻게든 구해 보려고 애쓰시는 것 같은데, 제가 졌소이다(검 5). 니 맘대로 하세요. 꼭 잘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 from 멜랑콜리아

 

====================================

 

음...  몇몇 좀 심한 표현들은 살짝 바꾸거나 지웠는데, 그래도 혹시 상처 받으셨다면 다시 이 곳을 찾지 않으시면 됩니다.

그리스도교인으로서 타로를 가지고 노는 것에 대한 입장은 다음에. 일단, 금기를 깨는 즐거움에 중독된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멜랑콜리아, 스타, 죽음으로 몰고 가는 치명적인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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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微物의 숨소리

오늘부터 4일간 진행되는 예수살이 공동체(http://www.jsari.com/main.php) 20기 제자교육에 들어간다.

2년쯤 전에 성당에 누군가가 와서 저 교육을 받고 생활이 많이 바뀌었다며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신용카드를 없애고 차를 없앴다고 하셨던가. 길에서 배운 것들을 생활에 어떻게 반영해야 할지 몰라서 좀 답답해 하던 터라 오래 기억에 남았다. 교육 공고가 날 때마다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개인 사정으로 지금에야 가게 되었다.

지상에서 천국처럼. 세상 안에서 세상과 다르게.

 

향상일로(절대의 진리에 이르는 외길) 정신으로 지상 천국 구현에 앞장서자. --

아니면 말고.

 

새 사람이 돼서 나오겠습니다.

바뀌어서 나온다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던 내가 몰랐던 바람직한 나를 발견해 보겠다는 각오랄까. 두둥!

Posted by 微物의 숨소리

그저께, 정기 구독 중인 한겨레 21(913호)을 보던 중 히 극장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기사를 보았다. '클리닉 가지 말고 영화를 보라'는 제목의 영화 소개 기사였다.

(기사 전문 :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2136.html)

기사는 컬러풀, 멜랑콜리아, 데인저러스 메소드라는 세 영화에 관한 것이었다. 멜랑콜리아는 아쉽게도 지방으로 내려간 것 같고, 시간상 컬러풀이 적당하길래 어제 아침에 주섬주섬 챙겨서 길을 나섰다.

천사인지 저승사자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애매한 프라프라의 인도로 자살한 소년 마코토의 몸에 들어가게 된 '나'에 관한 이야기.

자살, 환생, 원조교제, 왕따, 외도, 가정 불화 등의 소재를 다루고 있다.

할 말이 아주 많은 영화. 이어서 적기는 너무 귀찮고, 인상적인 것들만 단편적으로 정리.

 


"홈스테이"

정신이 잠시 머물러 있게 해 주는 곳, 몸.

몸이 없다면 영혼은 아마도 산산이 흩어져서는 산으로 들로, 사람들 마음 속으로 헤메 다니겠지.

 

"인간은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짜 자신의 색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컬러풀이라서 좋은 겁니다. 컬러풀로 살아가세요."

아, 기분이 즐거워지는 주문. 프라프라가 과제를 푼 '나'에게 두 팔을 벌리고 활짝 웃으면서 이 말을 할 때 고마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래, 누가 뭐래도 지치지 않고 컬러풀로 살아갈 테다!" 하고 속으로 되뇌었다는.

생각해 보면, '꼭 이 색깔에 맞춰! 안 그럴 거면 이 사회에서 나가'라고 나를 강제한 사람은 없었다. 따라가지 못할까봐, 평균에 맞추지 못할까봐 혼자서 불안에 떨었을 뿐.

살아 있는 동안에는 운이 좋다면 자신의 색을 찾을 수도, 바꿀 수도 있다. 그래서 살아 있는 것은 의미가 있다. 물론, 그 색 그대로가 더욱 아름답지만.

 

"그런 경우가 있어. 히로카 뿐만이 아니야. 이 세상이든 저 세상이든, 인간이든 천사든 모두 이상해. 그게 보통이야. 머리가 이상해지고 미치고. 그게 보통이야."

정상, 상식, 일반, 평균의 함정.

나는 정상적인 상태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힘들었다. 정상인 척 하느라고. 알고 봤더니 주변의 아주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말이나 해볼걸. 혼자 끙끙 앓았다. 내가 지금까지 본 세상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미치는 게 정상이다. 미치지 않는 게 비정상이다.

 

"힘들지만 지금이 좋아."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모른다. 지금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일단 살아 있으면 바꿀 수 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마음의 빚을 갚을 수도 있고 지금보다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다. 솔직히, 죽어 있는 상태도 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간만을 놓고 보면, 죽어 있는 게 정상이고 살아 있는 게 비정상이다. 오랫 동안 죽어 있다가 모처럼, 기적적으로 살아 났으니까, 기적을 좀더 누리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

 

기사가 소개한 것처럼 이 영화는 우울증/조울증을 치유하기를 바라는 사람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컬러풀한 인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 강제로라도 보게 만들고 싶은 영화.

뭐, 100% 상대측 과실은 없는 거니까. 서로 노력해야 하는 거겠지만서도. 이런 영화가 잘 돼야 되는데. 쩝. 여튼.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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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微物의 숨소리

나는 하늘이 좋았다.

민낯으로 오랜 시간 독대를 하고 난 다음부터 더욱 못견디게 좋아졌다.

땅에서 태어나 땅에서 살다가 땅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을 까맣게 잊을 정도로.

 

간절히 청하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준다는 하늘.

들어주기만 하고 이루게 해주지는 않는다며 어리광을 부린 적이 있다.

묵묵히 들어주기만 하는 게 얼마나 큰 내공이 필요한 일인지

(내가 부모님의 푸념을 견딜 수 있는 시간은 채 20분이 넘지 않는다.)

가만히 귀 기울여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위로인지 그 때는 몰랐다.

게다가, 하늘은 가만히 듣고만 있지 않는다. 매순간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진지하게, 부드럽게, 무섭게, 우스꽝스럽게, 아름답게, 역동적으로, 심하게 감동적으로.

 

어릴 때 부르던 노래 중에 '민중의 아버지'라는 노래가 있었다.

우리들에게 응답하소서 혀 짤린 하나님, 우리 기도 들으소서 귀 먹은 하나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 당한 하나님, 그래도 내게는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뭐 이런 가사의.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화상 당한 괴물은 그가 아니라 나였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겸손한 척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

샤크라를 덮고 있는 꺼풀이 하루빨리 스스로 걷히기를 바란다면.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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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微物의 숨소리
TAG 하늘

달째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참이었다. '도망쳐서 도달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면서 그닥 즐겁지 않은 시간을 힘겹게 견디던 중, 한 친구가 제주도 여행을 제안했다. 덜렁 '오케이요' 하고 대답은 했지만 왠지 내키지 않았다. 마음 편하게 휘리릭 놀러갈 상황도 아니고, 돈도 없고, 집에서 걱정할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차일피일 비행기 예매를 미루는 사이에 약속한 날은 점점 다가왔다. 시간만 까먹고 뒤늦게 안 간다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닌, 막다른 지점에 이르러서야 준비를 시작했다.

뭐가 그렇게 질기게 물고 늘어졌는지 모르겠지만, -결심공포증?-  비행기표를 예매하기까지 정말 힘이 많이 들었다. 그러던 것이, 막상 가기로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날아갈 것같이 가벼워졌다. 그제서야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밀려오면서, 정말로 오랜만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누구의 의지든, 나를 제주도로 몰아가고 있는 이 상황에 온전하게 나를 맡기고 순간순간을 느끼고 기록하면서 의미를 찾아보기로 했다.

 

짐을 싸들고 나서는데, 문 앞에 놓인 가방을 보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이 가방, 이 옷차림, 이 신발, 모든 것이 부산으로 내려 갈 때와 똑같은데 마음은 이렇게 천지차이인 이유가 문득 궁금해졌다. 스스로 평생 순례자로 살기로 해놓고, 길 위의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면서, 나는 왜 잔뜩 움츠러들어서는 투덜거리고 서 있었던 걸까.

자유의지와 강제 집행은 다르다며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지만, 사실 지금까지 자유의지로 관철시킨 게 뭐가 있었으며, 있었다 한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었다면 혼자 힘으로 언감생심 꿈이나 꿀 수 있었을까. 수많은 우연과 행운이 만나 일으키는 사건사고의 한복판에서 나는 그저 '실행' 버튼을 누르는 조력자일 뿐이다. 한정된 범위 내에서 살짝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문을 나서기 전부터 하나를 건진 느낌.

 

원래 공항버스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버스 정거장을 찾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신논현역으로 갔다. 옆을 지나던 사람들이 '급행 타자!' 하고 소리치며 두두두 뛰길래 덩달아 달렸다. 공항에는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도착했다. 바로 떠나는 비행기가 있길래 대기승객으로 등록하고 잠시 기다렸다. 다행히 그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여기까지, 내 계획대로 된 건 하나도 없었지만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계획 따위 필요 없어!' 라며 가끔 무모한 발언을 날리는 이유는 이런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럿이 함께 일할 때는 악보의 역할을 하는 계획서가 꼭 필요하기는 하다.

 

그리하여

5월 19일 토요일 12시 경 제주 공항에 도착했다. 조금 먼저 와 있던 친구와 함께 렌트카를 찾자마자 간 곳은 오분작 뚝배기 돌솥밥이 유명하다는 대우정(064-757-9662 제주시 삼도1동 569-27). 지역주민들이 많이 간다는, 나름 검증 받은 곳이란다. 천천히 밥을 먹고 나서 서귀포에 있는 민박집 곰씨비씨(www.gcbc.co.kr)로 차를 몰았다. 급히 수배했는데 마침 좋은 곳에서 묵게 되었다. 업적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의 친절과 불쾌하지 않을 만큼의 무뚝뚝함이 돋보이는, 친구의 표현을 빌자면 '적당한 방임'이 특징인 곳이었다.

곰씨비씨에 도착했을 때는 주인도 객도 아무도 없었다. 아무씨한테 전화해서 지정받은 방에 가방을 놓고 근처 올레길을 걸었다. 다음날 한라산에 가기 위한 준비운동이랄까. 사실, 9월 말 경에 올레길로만 400여 km 가량 제주도를 한 바퀴 돌 수 있다고 하길래 10월쯤 걸어볼까 생각했었지만, 그건 그냥 내 계획일 뿐이고, 앞에서도 말했지만 더 큰 의지에 몸을 맡길 수밖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리하여 걷게 된 9코스. 박수기정(박기수정? 박수정기?)이라고 불리는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난이도 상급의 7km가 조금 넘는 길이었다. 아래는 9코스 시작점에서 본 꽃밭. 안개꽃도 아니고 유채꽃도 아닌, 하얀 색을 주조색으로, 연한 분홍, 연한 보라를 띄는 저 슬프고 아련한 꽃은 무엇이람. 하면서 격하게 감탄하는데, 꽃 아래 쪽에 여자들 종아리만한 무우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무우 밭인듯.  

아래는 9코스를 걸으면서 찍은 사진들.  

그리고 저녁은 곰씨비씨에서 추천해준 대로 9코스 시작점에 있는 명물식당에서 탕과 구이를 먹었다. 뭐, 그럭저럭.

첫날밤은 2인실에서 묵었다. 혼자 자는 것이 익숙한 두 인간이 퀸 침대에서 같이 자야 하는 상황은 조금 곤혹스러웠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친구는 벽에 딱 붙어 있었고 나는 땅바닥에 떨어지기 일보 직전인 상태로 가장자리에 매달려 있었다.)

 

다음날(20일)의 주요 일정은 한라산 등반.

험하다는 관음사쪽 코스 말고, 어디더라... 석.. 거기로 올라갔다 내려오기로 했다. 왕복 19.2키로. 경사가 완만해서 오르는 내내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그래서 아주 조금 지루하기도 한 길이었다.

웬만큼 날씨가 좋지 않고서는 산 아래에서는 정상을 볼 수가 없고, 등반을 한다고 해도 백록담을 온전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고 들었는데(친구 말로는, 삼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단다.), 이 날은 고맙게도 한라산 신령님이 내게 많은 것을 허락했다. 덥지 않은 그늘, 땀을 식힐 만큼의 적당한 비, 그리고 온전하게 맨 얼굴을 드러낸 백록담까지.

한라산에서 내려와 간 곳은 제군일식(064-726-2323 제주시 일도 2동 365-5). 정식 코스를 먹은 것 같은데 친구는 회가 먼저 나오는 서빙 순서가 특히나 마음에 든다고 했다. 아래는 합체 직전의 카스와 한라산 소주, 그리고 사이다. 투명한 병에 담긴 소주는 처음 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날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서운해지면서 제주도가 몹시 사랑스러워졌다. 특히나 아침 일찍부터 나를 기다려 준 제주도의 하늘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면서 작품을 만드는 구름이 예술이었다. 찬연한 하늘 아래 일어나고 있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들 속에 나는 다시 자비로와졌다. 

한동안 아침 하늘을 멍하니 보다가, 곰씨비씨와 짧은 이별의 인사를 나누고 나서 찾아간 곳은 오설록 티뮤지엄. 음료수 한잔 시원하게 마셔 주고. 이렇게 사람들이 버글거리는 데는 아마도 뭔가 이유가 있겠지. 대개 그렇듯 아마도 시간과 돈. 

 

아래는 그 곳에서 마신, 유자맛이 나는 냉녹차. 그린티 뭐라는데.. 기억나지 않음.    

오설록에서 나와서 다른 관광지로 이동할까 하다가 시간이 애매해서 그냥 타이 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비싼 게 마음에 걸렸지만, 찌뿌드드한 몸의 피로를 푸는 데는 마사지가 최고다. 찾아간 곳은, 할까말까 망설이게 될 정도의 가격대. (타이 제주점 064-744-4235 제주시 연동 281-23)  

 

짧은 외출이었지만, 다녀온 후 아주 조금 강해진 것 같다.

그동안 참기 힘들게 어려웠던 것은, 아마도 내가 나를 방치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19km나 되는 산행을 하고 나서도 하루만에 씻은 듯이 회복되는 튼튼한 몸, 믿을 수 없이 매력적인 몸을 가지고 있다. 나는 매일의 각종 사건사고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믿을 수 없는 행운을 타고났다. 

그리하여. 다시, 있는 힘껏 돌보기로 한다.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나를.


발의에서 기획, 매끄러운 진행에 가이드까지. 친구한테 많은 빚을 진 여행이었다.

자꾸 빚지면 안되지만. 살아 있으면 갚을 수 있을 테니까 미리 걱정하지는 말자. 

Posted by 微物의 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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