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정기 구독 중인 한겨레 21(913호)을 보던 중 히 극장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기사를 보았다. '클리닉 가지 말고 영화를 보라'는 제목의 영화 소개 기사였다.

(기사 전문 :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2136.html)

기사는 컬러풀, 멜랑콜리아, 데인저러스 메소드라는 세 영화에 관한 것이었다. 멜랑콜리아는 아쉽게도 지방으로 내려간 것 같고, 시간상 컬러풀이 적당하길래 어제 아침에 주섬주섬 챙겨서 길을 나섰다.

천사인지 저승사자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애매한 프라프라의 인도로 자살한 소년 마코토의 몸에 들어가게 된 '나'에 관한 이야기.

자살, 환생, 원조교제, 왕따, 외도, 가정 불화 등의 소재를 다루고 있다.

할 말이 아주 많은 영화. 이어서 적기는 너무 귀찮고, 인상적인 것들만 단편적으로 정리.

 


"홈스테이"

정신이 잠시 머물러 있게 해 주는 곳, 몸.

몸이 없다면 영혼은 아마도 산산이 흩어져서는 산으로 들로, 사람들 마음 속으로 헤메 다니겠지.

 

"인간은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짜 자신의 색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컬러풀이라서 좋은 겁니다. 컬러풀로 살아가세요."

아, 기분이 즐거워지는 주문. 프라프라가 과제를 푼 '나'에게 두 팔을 벌리고 활짝 웃으면서 이 말을 할 때 고마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래, 누가 뭐래도 지치지 않고 컬러풀로 살아갈 테다!" 하고 속으로 되뇌었다는.

생각해 보면, '꼭 이 색깔에 맞춰! 안 그럴 거면 이 사회에서 나가'라고 나를 강제한 사람은 없었다. 따라가지 못할까봐, 평균에 맞추지 못할까봐 혼자서 불안에 떨었을 뿐.

살아 있는 동안에는 운이 좋다면 자신의 색을 찾을 수도, 바꿀 수도 있다. 그래서 살아 있는 것은 의미가 있다. 물론, 그 색 그대로가 더욱 아름답지만.

 

"그런 경우가 있어. 히로카 뿐만이 아니야. 이 세상이든 저 세상이든, 인간이든 천사든 모두 이상해. 그게 보통이야. 머리가 이상해지고 미치고. 그게 보통이야."

정상, 상식, 일반, 평균의 함정.

나는 정상적인 상태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힘들었다. 정상인 척 하느라고. 알고 봤더니 주변의 아주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말이나 해볼걸. 혼자 끙끙 앓았다. 내가 지금까지 본 세상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미치는 게 정상이다. 미치지 않는 게 비정상이다.

 

"힘들지만 지금이 좋아."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모른다. 지금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일단 살아 있으면 바꿀 수 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마음의 빚을 갚을 수도 있고 지금보다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다. 솔직히, 죽어 있는 상태도 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간만을 놓고 보면, 죽어 있는 게 정상이고 살아 있는 게 비정상이다. 오랫 동안 죽어 있다가 모처럼, 기적적으로 살아 났으니까, 기적을 좀더 누리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

 

기사가 소개한 것처럼 이 영화는 우울증/조울증을 치유하기를 바라는 사람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컬러풀한 인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 강제로라도 보게 만들고 싶은 영화.

뭐, 100% 상대측 과실은 없는 거니까. 서로 노력해야 하는 거겠지만서도. 이런 영화가 잘 돼야 되는데. 쩝. 여튼.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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