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시여. 이 빌어먹을 우연에 제가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게 하소서. 

2010년, 시간이 멈춘 이래 앞으로 나가지도, 지난 일을 정리하지도 못한 채로 옴짝달싹 못하고 갇혀 있다가 

재작년인가, 하는 데까지 해보자 하고 하루하루 정리하다가 세상의 시간에 금세 추월당하고는 다시 넋을 놓아버렸었다. 

다시 기억해 내지 않으면 안되는 일들, 점점 희미해져 가는 사람들, 생각들, 느낌들이 몇 년째 안에서 차오르다 차오르다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도저히 꺼낼 수가 없어서 모른 체 했더랬다. 

 

코엘료의 책들을 읽던 도중, 정작 초기에 그를 유명 작가 반열에 올려놓은 순례자를 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마도 3월 초였었다. 

하루면 도착한다고 안내돼 있었는데, 다른 책들 때문인지 이틀이 가고 사흘이 가도 오지 않았다. 

마침내 책을 받아든 날은 공교롭게도 3월 6일. 5년 전의 거사(!)가 있었던 바로 그 전날이었다. 

이건 무슨 조화인가, 하고 잠깐 생각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그냥 털었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그냥 지나가지만, 내 언젠가 소설 속의 지명과 의례들을 나의 기록 위에 얹어 볼 테다.) 

 

어제(3/30), 손님을 집에 들여야 해서 여기저기를 정신 없이 치우던 중 책장에 놓여져 있던 까미노 기록 3종 세트(수첩, 알베르게 안내 종이, 안내 책자)를 발견하고 무심히 가방에 넣고 집을 나와서 사무실 책장에 아무렇게나 넣었었다. 

긴박한 사건사고가 터지는 와중에 오늘 하루에만 철지난 이야기들에 대한 포스팅들을 숙제하듯이 쏟아내고, 막 책상을 정리하려다가 여행 기록들을 적은 포스팅을 보게 됐다. 책장 안에 넣어 둔 수첩을 꺼내 든 것은 정황상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년 전의 기록은, 매일 조금씩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다가 하필 3월 31일을 마지막으로 끝나 있었다. 

이 정도 우연에 흔들리기에는 그간 겪은 경험이 아깝다. 그렇지만 등골이 오소소 떨리는 것은 사실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이 이렇게 되려고 이러는 건지, 집 컴퓨터를 백업한 외장하드를 사무실 책상 서랍 안에 넣어 둔 것이 생각났다. 

이상한 우연에 각종 보조기억 장치와 관련 이미지까지 구비되어 있으니 더이상 물러설 수 없을 것 같다. 

매년 사순과 부활을 지내면서 겪었던 마음 고생에 비하면, 묵은 기억을 불러내는 일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5년 전 오늘, 나는 라바날 델 까미노에서 있었다. 라바날에 도착했던 그 날 비가 왔던 것처럼, 오늘도 비가 오고 있다. 

이미 지난 일에 주책 없이 가슴이 다시 아플까봐, 차마 다른 포스팅들을 들춰보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써내려갈 것은 2010년 4월 1일, 라바날에서 폰페라다까지의 33km, 9시간 반을 걸어간 기록이다. 

전날 눈이 와서 길에 눈이 많이 쌓여 있다. 이 날은 크루즈 데 페로에 간 날이다. 

다들 십자가 아래에 무언가를 묻는다고 들었는데, 소중한 걸 묻는 건지 버리고 싶은 걸 묻는 건지 그 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혼자 오랫동안 걷게 돼서 아무도 못 만날 줄 알았는데, 수정, 엘렌, 디니, 마르코, 로를 만났다. 

지금껏 만났던 50-60명 중 5-6명하고만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는 것을 보면, 만나게 돼 있는 사람만 만나게 돼 있는 것 같다. 

 

이날은, 까미노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등장한다. 

가족처럼 매일 만나는 것이 당연해 진 사람들을 언젠가부터는 다시는 못 보게 될 텐데, 그 어색함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당장 지금, 5년이 지나니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4월에 오는 눈 따위, 하나도 안 신기하다. 하루에 봄여름가을겨울을 다 겪게 하는 희한한 날씨다. 

 

루즈 데 페로에 도착할 때까지, 뭘 묻어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을 하고 나니, 마치 연극 대본을 받아든 배우처럼 망설임 없이 무언가를 묻었다. 

여전히, 가장 소중한 것을 묻는 건지 가장 버리고 싶은 것을 묻는 건지가 불확실한 가운데, 나는 나를 묻었다. 

명함 하나를 꺼내고, 노란 재생지로 싸서는 돌 아래에 두었다. 

처음에는 명함이 고작 직딩 19년밖에 의미하지 않으니 명함에 내 삶 전체를 담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지만, 그 날까지 살아온 삶의 결과이자 총화라는 생각이 나서 가차 없이 묻었다. 
다시 시작하자. 
라고 쓰여 있다. 수첩에. 나는 그 때까지 그 모습으로 살아온 내가 정말 싫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흥, 이제 너 정도 크기는 안 무서울 때가 됐다고!' 하면서도 행여 눈이 마주칠까 슬금슬금 피하게 되는. 

 

고이 잠드소서. 오늘도 그 앞을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도 평화. 

 

산 하나만 넘으면 동네 그늘진 곳에도 눈 한 톨 없는 이런 날씨, 이제 하나도 안 신기하다. 

 

 

 

마을 이름과 알베르게 이름이 빼곡이 적혀 있는, 양면 인쇄된 A4 용지는 이제 1/4밖에 남았다. 

5년간 내 발목을 붙잡고 있던 이 길도 이제 곧 끝이다. 정말로, 끝. 끝. 끝. 

 

폰페라다 도착. 짐을 풀자마자 동네 성으로 올랐다. 33km 걷고 나서 동네를 돌아다니다니. 지금 생각하니 제 정신이 아니었다. 

 

젠장할, 망할 쌍무지개 같으니라고. 

티로와 걷던 시골길에서 보았던 선명한 쌍무지개가 생각나 버렸다. 5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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