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3일 화요일의 새아침이 밝았다.

나름 진보적이고 나름 이유 없이 사람을 속박하는 기존 질서에 반항하면서 소신껏 살았다고 자부해 왔던 나는, 전날 밤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서양인이 보기에는 사뭇 엉뚱한 일을 한 게 멋적었다. 나는 그간, 틀 밖으로 추방되지 않을 만큼 적당히 경계 주변을 알짱거리면서 괜히 신경만 거슬리게 했던 거였다.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한 채 잔뜩 허세를 부리면서.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나를 100%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여삐 봐주고 있었다. 티로는 기회 있을 때마다 그 따위 위선적인 경계, 부수고 나가라고 쑤셔댔다.

 

아래 사진은 보아딜라 델 까미노 숙소의 정원. 아침 10시에 숙소를 나섰다.

 

나는 어느 선까지 나가라는 말인지 몰라서, 그리고 티로가 내게 뭘 바라는지 몰라서 계속 돌려서 물었다. 매사 자신만만하고 솔직하고 당당한 엘렌도 있고 예쁘고 착하고 똑똑한 샤나도 있는데 왜 내 옆에서 나를 자극하느냐고. 티로는 그때 엘렌과의 인연을 말해주었다. 산토도밍고로 들어가기 며칠 전, 어느 마을에서 엘렌과 디니 모녀를 만났었고 꽤 오래 같이 걸었다고. 엘렌은 호감을 숨기지 않았고, 자기도 싫지는 않았지만 엘렌과 자기는 둘다 백말띠라 심하게 다혈질인 게 분명해서 처음에는 불같이 타오르겠지만 금방 싸우고 헤어지게 될 거라서 관계를 더 발전시키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그런 판단으로 일행과 헤어졌는데, 산토도밍고에서 다시 만났다고. 자기는 다음 마을까지 걸어가려고 했는데 엘렌이 산토도밍고는 너무 아름다운 마을이니 같이 거기서 멈추자고 제안했다고. 그러고 보니, 산토도밍고 숙소에서 처음 만났을 때 엘렌과 티로가 아이리시 펍에서 받은 빨간 모자를 같이 쓰고 있었던 게 기억났다. 엘렌이 좋아하는 것 같은데 둘이 사귀는 건 어떻겠냐고 했더니, 그런 생각을 안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서 전날도 만나서 꽤 오래 얘기를 한 거였지만, 동행하자는 모녀의 요청을 받았을 때 조금 흔들리기는 했지만 내가 있는 곳으로 온 거라고 했다. 그리고, 루르드에서부터 걸어온 용감한 처녀 샤나는 여러 모로 엘렌보다는 자기와 더 맞을 것 같기는 했지만, 나이 차이가 너무 나서(20세 가량?) 아무런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고 했다.

 

덧붙여 설명하기를, 산토도밍고에서 내가 우의를 놓고 먼저 떠난 날, 동독 출신의 홀거트가 자기한테 내 우의를 주면서 전해주라고 했는데, 나와 좀더 말을 해보고 싶었던 차여서 잘됐다 싶어서 핑계 김에 우의를 챙겨들고 쫓아 온 거라고.

 

엘렌과 홀거트가 아니었으면 둘이 만나지 못했을 거라는 설명이었다.

 

또 덧붙이기를, 그래서 사실은 안면 있는 다른 순례자들과 계속 같이 걷는 게 부담스러워서 한 마을을 더 가거나 덜 가서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는 거였다. 어쩐지. 그래서 며칠째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던 거였다.

 

무심하게 "그랬구나.. 그랬구나.." 하고 맞장구를 치면서 긴 설명을 듣는 동안, 엘렌과 샤나한테 야릇한 질투가 일어났다. 처음으로 내 감정이 좀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왠지 둘 사이의 거리를 좀 좁혀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초더미를 쌓아둔 길을 걷는데 티로가 잠깐 쉬었다 가자고 했다. 요며칠 중간중간 쉬면서 명상을 했던 터라 나는 별 생각 없이 티로가 이끄는 대로 건초더미 뒤편으로 갔다. 거기서 우리는 명상을 한 건 아니고, 그러니깐,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계속 머뭇거리고 있던 내게 티로는 "it's for you." 라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속으로 '나를 위한 게 아닌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을 했지만, 어떻게든 이참에 내 안의 금기를 깨고 경계를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도 했고, 위의 여인들과의 묘한 경쟁심리도 발동해서, 그러니깐, 그렇게 했다. 

 

그날 건초더미에 누워서 바라보았던 하늘을 잊을 수가 없다. 잘 마른 풀은 따뜻했고, 햇볕 향기가 났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해방감이 밀려 왔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등에 묻은 풀을 털어내고 길을 가면서 생각했다. 뒤에 처진 티로는 보이지 않았다. 깊이 생각에 빠져서 한동안 혼자 진창길을 걷고 있었다.

 

 

 

이것은 또 무슨 신의 장난인지. 일이 그렇게 되려고 그랬는지, 산토도밍고 이후로 며칠째 보이지 않던 엘렌과 디니 모녀가  바로 앞에서 걷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거여서 보통때 같았으면 잰걸음으로 달려가 인사하고 동행했을 터였지만, 나는 모녀와 거리를 두었다.

 

 

오래된 작은 운하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티로를 기다렸다. 멀리서 티로가 보였다. 몇분후, 눈앞에 나타난 티로에게 밑도 끝도 없이 말했다. "i'm ready." 

 

티로는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들었고 나는 같은 말을 서너 차례 반복했다. "i'm ready." "i'm telling you i'm ready."

 

 

몰랐다. 말귀를 알아듣자마자 티로가 바로 다음 마을에서 딱 멈춰 설 줄은. 여느 때처럼 충분히 걷다가 저녁에 도착한 마을에서 호스텔에 가게 될 줄 알았는데, 보아딜라 델 까미노에서 딱 6km 떨어져 있는, 바로 다음 마을인 프로미스타에서 까미노를 조금 벗어나 마을로 들어갔다. 한걸음 한걸음이 천근만근이기 때문에, 순례자들은 길을 잘못 들어서기 전에는 까미노 밖으로 한 발짝도 안 벗어나려고 한다. (나로 말하자면, 목이 말라도 까미노에서 50m 이상 떨어져 있는 바에는 들르지 않았고, 햇볕이 따가와도 까미노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나무그늘보다 길 가운데 그냥 앉아서 쉬는 편을 택했다.) 그렇지만, 순례자의 자존심도 대단해서, 까미노가 아닌 직선 길과 까미노 화살표가 있는 구불구불한 길이 앞에 놓여 있는 경우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화살표 쪽을 택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10시에 천천히 걷기 시작해서 건초더미에서 약간의 시간을 보내고, 다른 때처럼 점심으로 메뉴 델 디아와 와인 각 1병을 한 시간 넘게 먹고 마시고, 프로미스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30분 경이었다.

 

티로는 다른 때처럼 지형지물을 유심히 살피더니 작은 까페로 나를 데리고 가서는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영문을 모른 채 까페에 있던 나는 10분쯤 후에 티로가 왔길래 어디 갔었냐고 물었다. 티로는 빵을 좀 사왔다고 했다. 빵을 달라고 했다가 단호하게 거절당했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빵을 담은 봉지 안에는 약국에서 산 콘돔이 같이 들어 있었다. 티로는 프로미스타에 들어서면서 호스텔과 약국이 어디 있는지를 찾았던 거였고, 나는 그 기민함에 한편 어이가 없었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마당에 어디서 멈춰서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티로가 미리 봐둔 호스텔로 함께 갔다.

 

 

호스텔에 들어간 시간은 낮 2시 경. 한국에서 사건이 전개될 때와도 사뭇 달랐고, 까미노 위에서의 일상과도 판이하게 다른 그 상황이 몹시 어색했다. 저런 전차로 알베르게가 아닌 곳에서 자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간 들었던 바에 따르면, 티로는 지난 수년간 일에서도 연애에서도 계속 실패만 했었고 한동안 여자를 만나지 않았으며 몹시 갈급한 상태였다. 그렇게 해서, 나는 2010년 3월 23일 화요일에 예전엔 단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일을 하게 되었다. 뭐든 그렇겠지만, 막상 닥쳐서 겪고 나니 생각보다 어렵지도 이상하지도 않았다. 

 

글을 쓰다 갑자기 문득 '내가 왜 이런 걸 공개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보라고 쓰는 게 아니고 내가 필요해서 쓰는 건데 그렇다면 나는 왜 이것을 온라인에 올리는 걸까? 노출증이 도지는 중인 건가?

 

잠시 고민 끝에 그냥 올리기로 한다.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편집해서 보여주는 사람들을 못견디게 싫어하면서 "다 말하지 않을 거면 차라리 아무 것도 말하지 말지?" 라며 비난해 왔던 나에게 내가 내리는 벌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거북한 상황은 단 몇일만에 끝난다. 그 후에는 너무 진부해서 이가 갈리는 지루한 신파만 계속될 뿐이다.

 

다만, 진작부터 태그는 걸지 않았지만 오늘부터는 카테고리 분류도 하지 않는 걸로 내 소심함을 충족시키기로 했다. 

 

2013년 3월 23일은 동생 부부랑 같이 엄마를 만났다. 여행이 끝날 무렵부터 뜨겁게 사랑하게 됐던 우리 엄마. 수잔과 알렉스와 디니와 티로의 발을 주무를 때마다 집에 돌아가면 엄마한테도 꼭 안마해줘야지, 하고 결심하고서도 차마 멋적어서 시도도 못해본 게 벌써 3년. 

 

내가 오늘 이러고 있는 건 정말 정상이 아니다.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해서 자료를 하나 만들어야 하는데 기초 조사도 다 못했다. 내일 낮부터 시작해서 밤을 샌다 치더라도, 그러려면 오늘은 진작에 잠자리에 들어서 컨디션을 조절하는 게 맞는 거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다. 나로서는, 미루면 미룰 수록 기억에서 사라지는 일부터 먼저 잡을 수밖에 없다. 하루라도 빨리 지난 3년을 복기하는 것이 오늘 내가 오늘의 나로 살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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