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어렵게 어렵게 17일 저녁에 들어간 산토도밍고에서 한발자국도 떼지 못하는 지지부진함이라니. 그러면 그렇지. 화장지 풀리듯 순순히 풀려 나올 리는 없겠지.

 

종교학과 타로와 영어와 라틴어와 생활운동 등에 시간을 많이 뺏기고 있다, 는 것은 핑계임에 분명하다. 지난 일주일은 무의식까지 에고의 음모에 동조하기로 했는지, 밤 12시만 되면 졸음이 쏟아졌다. 2013년 3월 18일 월요일, 미루고 미뤘던 일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나는 닥치는 대로 순서 없이 일을 쳐냈고, 그 중에 길 이야기는 빠져 있었다. 그후로도 며칠간 죽.

 

 

2010년 3월 18일은 목요일이었다. 다른 때처럼 제일 먼저 일어나서 7시 15분쯤에 조용히 숙소를 나왔다.

 

매일 2층 침대에서 자다가 1층 침대에서 잘 때의 안온하고 럭셔리한 느낌이라니, 하면서 흐뭇해서 길을 가는데 계속 뭔가 허전했다. 허전한 느낌이 오래 간다는 것은, 뒤에 두고 온 것이 엄청 중요하다는 뜻인데... 하면서 생각을 집중한 결과. 음. 산토도밍고의 침대 밑에 우의를 두고 온 것이 불현듯 생각 났다. 어쩐지, 전날 침대 밑에 밀어넣을 때 좀 불안하기는 했었다.

 

날씨는 전날처럼 꾸물거리는 것이, 조만간 비가 올 게 분명해 보였다. 이미 1시간 어치 정도 걸었던 터였다. 돌아갈까, 잠시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우의를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나헤라에서 만난 진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었다. 진은 프랑스 청년 레니(르네?)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고 있었다. 둘이 계속 같이 걷고 같이 먹고 같은 곳에서 묵었다길래 친한 줄 알았었는데, 알고 보니 진도 나처럼 거절을 못해서 끌려다니고 있는 거였다.

 

아래 사진은 우의를 놓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쯤의 광경. 막막하다. 

 

 

진과 헤어져서 한참을 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전날 만난 티로였다. 티로는 내게 줄 선물이 있다고 했다. 전날 저녁에 식탁에서 내가 했던 시시껄렁한 농담을 인용하며, 자기한테 사과를 주면 자기도 내게 무언가를 주겠다고 했다. 전날 밤에 사과는 키스를 뜻하는 은어였었다. '별 싱거운 사람 다 있네!' 하는 표정을 지었더니 장난을 멈추고 가방에서 우의를 꺼내서 내게 주었다. 비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솔직히, 정말, 너무 고마웠다.

 

 

 아래 사진은 같은 숙소에 묵었던 스페인 분인데, 가족들이 산토도밍고로 찾아와서 짐을 택시에 실어 다음 마을로 보내고, 소풍 가듯 가볍게 걷는 중이시다. 손잡고 걷는 풍경이 너무 좋아서 한장 찍었다. 어쨌든.

 

 

 그 후 우리는 레니와 티로, 나와 진이 짝을 이루어서 꽤 걸었다. 오랜만에 한국말로 떠드니까 좋았다. 진은 레니가 먹기 싫은 음식을 자꾸 같이 먹자고 한다며 투덜거렸다. 우리는 길에서 만난 독특한 순례자들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브라질에서 왔다는 페드로가 귀엽기만 했는데, 진은 그가 피레네 정상에서 쪼꼬렛을 혼자 먹었다며 이를 갈았다. 산토도밍고에서 아이리시 펍에 같이 갔던 한 아저씨는 배낭에 늘 와인병을 꽂고 훠이훠이 걷는데 알고 봤더니 로맨틱한 순례자가 아니라 알콜 중독자였다, 뭐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가끔씩은 서로 짝을 바꿔서 나는 티로와, 진은 레니와 걷기도 했다. 진은 티로가 내게 호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리 친절하지만은 않았던 모습들을 떠올리며, 그럴 리는 없다고 말했다. 자기한테는 웹 프로그래머라고 했는데 나한테는 침술사라고 했냐며 의아해하기도 했다.

 

 

이 날은 주로 혼자 걸었다. 알고 보니 나는 정말 걸음이 느린 인간이었다. 남들보다 먼저 걷고 남들보다 오래 걸어야 비슷하게 진도를 맞출 수 있었다. 대신 절대로 무리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느리긴 했지만 부상도 적었다. 그러다보니 혼자 걷는 시간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았다. 좀 같이 걷는 듯 하다가는 종종걸음으로 멀어져갔다.

 

이날은, 전후방 3km 이내에 개미 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는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날 걸었던 길 중에 제일 황망했던 곳이다. 한 쪽에는 지나가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고, 또 그 옆에는 까미노 화살표가 있다. 진흙 속으로 발이 20cm는 족히 빠지는 공사장을 가로질러야 산티아고로 갈 수 있었다.

 

 

중간중간 가다 보면 핸드메이드 스타일의 까미노 화살표와 함께 까페나 바를 설명하는 광고판이 많이 등장한다. 화살표만 있거나 까페 광고판만 있으면 좀 불안해지는데, 저렇게 두 개가 조합이 돼 있으면 일단 까미노 위를 걷고 있는 중인 것은 맞기 때문에 마음이 놓인다. 

 

 

아래는 이름 모를 마을의 안내판. 576km 남았단다. 그렇게까지 친절할 필요는 없는데. 여전히 길은 멀지만 처음처럼 막막하지는 않았다.

 

 

 12시간 가까이, 28km를 걸은 끝에, 저녁 7시에 빌람비스티아(villambistia)에 도착했다. 마을이 작아서인지 생장피드포르에서 받은 숙소 리스트에는 나와 있지 않은 곳이었다. 다른 순례자들은 전 마을이나 전전 마을에서 걸음을 멈춘 것 같았다. 빌람비스티아의 숙소는 침대가 7-8개 밖에 없는 작고 깨끗한 곳이었다. 티로와 함께 체크인하고, 처음 보는 다른 순례자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는 쉬었다. 

 

이 날은 아드리안이라는 스페인 청년을 새로 만났다. 진과 레니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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