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정말 어떻게 됐나보다. 미쳐 가고 있는 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되나 몰라. 

 

라고 쓴 건 사흘 전인 2016년 4월 25일. 그리고 이어서 아래에 띄엄띄엄 써내려가고 있는데 이게 대체 언제 끝날지. 오늘은 2016년 4월 28일. 티로가 만으로 쉰 살이 되는 날이다. 6년 전이나 지금이나, 리듬이 불규칙한 몸은 어떻게 알고 다시 반응 중이다. 

 

당시(4/4)에 묵었던 폰프리아의 알베르게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대로 쓰러져 잔 모양인지, 사진도 일기도 없다. 정황상 페드로를 그 곳에서 다시 만난 것 같다. 페드로에게 이런저런 순례자들의 소식을 들었고, 아침에 같이 걸었다. 샤나도 만났다 하고, 애니도 만났다는데 티로 이야기는 없었다. 도대체 누구랑 어디를 걷고 있는 건지. 혼자 걷는지, 다른 사람을 만난 건지. 

 

알베르게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곳을 나와서 4월 5일에 걸었던 길은 또렷이 기억난다. 일단, 화살표와 표지들이 전과 달랐는데, 봐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갈림길에서 헤매다가 비닐 리본이 나풀거리고 있는 길을 택했다. 갈림길에서 나처럼 망설이고 서 있던 페드로에게 "저 표시가 있으니 이 길이 확실해"라고 했더니 페드로도 나를 따라 왔다. 

그 후 한 30분을 같이 걷는 동안 심장이 쪼그라드는 줄 알았다. 길이 점점 좁아지고 험해지더니 급기야 개울에 이르러 표지가 끊어져 버렸다. 우리를 인도했던 비닐 끈 표지는 까미노 알림용이 아니라 접근 금지용인 것 같아보였다. 아니, 실은 개울을 맞닥뜨리고 나니 그제사 한눈에 봐도 딱 그랬다. 반대편 개울 옆에도 비닐 끈이 묶여 있었다. 우리는 돌아갈 건지 절대로 까미노가 아닌 것 같은 그 길을 계속 갈 건지를 정해야 했다. 

29일차. 이때 쯤이면 걷기에 이력이 나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 걸음 한 걸음이 힘겨운 건 마찬가지기 때문에 길을 잘못 안내하는 것은 엄청난 민폐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이 걸어가 버렸다고 판단했는지, 페드로가 개울을 건너자고 했다. 

개울을 건넜는데 길은 계속 젖어 있었다. 철벅거리면서 물길인지 사람 길인지 모르는 길을 앞서 걷는 페드로를 보니 진심으로 미안했다. 

"뒤에서 보니 너 꼭 물 위를 걷는 거 같아. 예수님을 보는 느낌이야. 이 길이 까미노가 아니면 혹시 나 때릴 거니?" 라고 시덥잖은 농담으로 미안함을 덜어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다른 한국인 순례자로부터 페드로가 말도 못하게 까칠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은근히 겁도 났다. 의외로 페드로는 한 마디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묵묵히 앞장서서 걷는 모습을 보니 더 미안했다. 

한참을 걸으니 낯익은 표지들이 보였다. 다시 까미노 위로 올라 선 것이다. 동네 바에 들러서 물에 젖어 축축한 양말을 잠깐이라도 말려야 했다. 그때까지 페드로가 동행해 주었다. 엄청난 개인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늘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다른 순례자들의 평판 때문에 안 좋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레니에 대해서도 페드로는 전혀 다르게 설명했다. 진은 그가 너무 성가시게 하고 눈치도 없다고 했는데, 페드로는 그가 음식을 만들어서 나눠 먹는 것을 좋아하고 유쾌하다고 한다. 어느 누구도, 직접 겪기 전에는 모를 일이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린 청년으로만 보였던 그가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워졌다. 우리는 메일 주소를 교환했고, 그후로도 많은 시간을 함께 했으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와서는 페북 친구가 되었다. 

 

사모스는 가깝다 싶고 사리야는 멀다 싶다 싶어서 아침에 고민을 좀 한 것 같다. 페드로와는 어디서 헤어졌는지 모르겠다. 사모스를 지나쳐서 사리야로 향하다가, 2km 쯤 남은 곳에 덩그러니 하나 있는 커다란 알베르게에 들어갔다. 잔디밭도 있고 헬스 기구도 있고 피아노도 있는 곳이었다. 저녁이 되어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길래, 크고 좋은 집에서 혼자 자게 될 줄 알고 엄청 흥분했었는데 밤에 한 명이 찾아왔다. 팜플로나의 까미노 옆에 집이 있어서, 매일 집을 나서면 즉각 순례자 모드로 돌입하게 된다는 루이스였다. 

이 날은 어울리지 않게 혼자 진지했던 것 같다. 수첩에 있는 내용을 옮겨 적으려고 보니 낯뜨겁다. 

 

비껴 가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고. 그것이 인생이다. 

까미노 길은 하나지만 그 길에서 경험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화살표를 따라 자기만의 길을 가면서 자기만의 화살표를 그리고, 결국 하나의 화살표가 된다. 

그리고, 어떤 화살표들은 뒤따라 걷는 사람들을 안내하기도 한다. 

 

낮에 물 위를 걸을 때, 처음에는 한 발만 적시려고 노력했는데, 너무 힘들었다. 

두 발을 푹 담가서 다 젖고 나니 몸도 마음도 편해졌다. 

내게는 너무 특별한 길. 

한두 명은 나타날 법도 한데 아무도 오지 않는다. 

다들 어디로 간 건지. 게을러졌나. 

폰페라다와 라바날의 알베르게가 벌써 기억나지 않는다. 

좀 자세히 적어둘 걸 그랬다. 

 

그 다음날인 4월 6일에는 괜히 일찍 깨서는 아침부터 끄적거려 놓았다. 아 귀찮아. 뭐가 잔뜩 쓰여 있다. 그냥 버리자니 좀 아깝다. 아래에, 다음날 아침 사진이 시작되는 곳에다 옮겨 놔야겠다. 

 

아래 위 사진은 폰프리아 알베르게를 나와서 만난 낯선 표지들. 이 길이 그 길이 맞다는 건지, 어느 길로 가라는 건지. 

발 디딜 곳이 마땅치 않은 곳. 어떤 길은 10cm 이상 물이 흐르고 있었다. 물 위를 걷는 기분이 어때? 하고 페드로에게 농담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덜덜 떨었던. 

 

아래는 칼보르에서 묵었던 사립 알베르게. 깨끗하고 고급스러웠고, 비쌌다. 도착해서 씻고 옷 갈아 입고 여기저기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지금(20170223) 보니, 창문 너머로 멋진 석양을 볼 수 있는 저 곳, 너무 멋지다. 일에서 돌아온 남편이 아내와 신혼인 것처럼 키스하는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난다. 옛날옛날에는 그랬겠지.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살아 돌아오기가 쉽지 않았을 거야. 하긴.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다. 

 

티로는 방명록을 보지 않는다. 티로처럼 처음에는 쓰지도 않고 보지도 않던 나는, 언젠가부터 고집스럽게 방명록에 각종 고백을 털어놓고 있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티로도 며칠 뒤에 이 알베르게에 묵었었다고 했다. 그리고 잠깐 미쳤었는지 방명록을 봤다고 했다. 누군가 그에게 방명록 내용을 전해 줄 거라 생각했지 직접 볼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여러 모로 쪽팔리는 일이다. 나중에 만난 티로는, 그때 니가 사랑에 빠졌다는 사람이 자기냐며 물었었다. 그걸 몰라서 묻냐, 이 바보 멍텅구리 변태 자식아. ㅠ

 

그 때 벌써 미쳐 있었군. 난데 없이 웬 4월 10일.

이 자료 저 자료를 다 뒤져도 칼보르에 도착한 때는 명백히 4월 5일 저녁이었구만. 다음날 아침에 방명록을 썼다 해도 4월 6일 화요일이거든. 그리고 4월 6일이 화요일이면 4월 10일은 토요일이거든. 

동양에서 온 미친 여자가 자기를 덫에 걸리게 할 거라더니. 그 때 이미 정신이 우주 밖을 헤매고 있었던 듯. 생각해보면 그 여자는 나인 게 맞는데. 덫에 안 걸리고 가기도 잘도 갔다. 미친 여자가 아니라 미칠 여자여야 나인가. 

여튼. 

 

 

 

 

사람들이 죄다 미친 듯이 달려가는 사리야 바로 코앞이라 한가한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왜 까미노를 하겠다고 결심해서 이 고생인지

야곱은 왜 산티아고에 묻혀서 우리를 그리 가게 하는지

아무개는 왜 확실하지도 않은 무덤을 야곱 거라고 했는지

별은 왜 아무개를 인도했는지

처음 10일, 진짜 모두를 원망하면서 걸었습니다. 

그 다음 20일은 30km, 40km씩 걸으면서 매일 밤 "i did it!", "i made it!!"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산티아고로 가는 걸음을 늦추고 있습니다. 

인생이랑 비슷한 거 같아요. 

후반 3분의 1을 깨달음의 길이라고 한다더니, 정말 매일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늘 감사하며, 더 많이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camino, a miniature of normal life.

i didn't know why i was here,

i fell in love with someone, and broke up, 

i did something eagerly, 

i was disappointed with myself, 

i found what i was, and began to love myself. 

thank you god, who let me be here on camino.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 님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이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도중에서 만나를 지고. 

 

그때는 뭔가 한껏 충만했는데, 6년 지나니 소용 없더라. 다 닳아 없어져 버리더라. 살도 다시 찌더라. 

여튼. 카메라에 기록된 시간들을 보면 아래 사진부터는 그 다음날인 4월 6일이라야 말이 된다. 창문밖 풍경이 굉장히 볼만 했는데, 역시 나는 다른 것도 못하지만 사진에는 더더욱 재능이 없다. 

 

4월 6일은 일기가 길다. 이래저래 골라 쓰기 귀찮으니 칼보르의 알베르게를 떠나기 전 새벽에 쓴 것은 아래에 옮긴다. 유한성에 대한 자각이 있었던.

 

어찌어찌하다가 일찍 깨 버렸다. 

700km를 걸었더니 70살이 된 것 같다. 

길 위의 사람들이 관대한 이유는, 까미노가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죽는다는 것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세상 사람들은 왜 그럴까?

 

포르토마린에서 할 일. 

사리야 지도 구하기

엽서 써서 우체국 가기

은행 입금 확인 

친구들 및 가족들 전화

환전

 

까미노는 인생을 축약해 놓은 것 같다. 

왜 왔는지 이유를 모르는 채로 와서는 불안 속에 시간을 보내고, 왜 하는지 모르는 일을 열심히 하고, 

만나고 헤어지고 질투하고 사랑하고 깨지고 아파하면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생각하게 되고 발견하게 되고,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었을 쯤이면 끝이 얼마 남지 않은.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시간을 늦추고 싶어지고, 더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는, 다음날 티로에게 보낼 메일에 쓸 내용들이 적혀 있다. 그 내용을 다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띄는 것은...

 

어떤 이가 이 길을 간다고 했더니 한 지인이 곧 죽게 된다고 해도 지금 그 일을 할 거냐고 물었다고 했다. 그는 그러겠다고 하며 길을 나섰다고 한다.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메일을 보내기로 한다. 

빨리 도착하건 늦게 도착하건 14일까지는 피네스테레에 있을 예정. 

15일에는 산티아고로 돌아가서 파라도르에서 묵고 16일에는 로마로. 

18일부터 24일까지는 아무 일정이 없다. 

남쪽으로 갈지 동쪽으로 갈지. 

하루에 15km씩만 걸어서 월요일에 산티아고에 가려고 하는데, 그렇게 될지 어떨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언제 도착을 하건 피네스테레에서 14일까지는 있으려고 한다. 

메일 안 본다는 거 알고 있다. 

집에 돌아가서 보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보낸다. 

 

4월 5일 밤 늦은 시간에 로자라는 스페인 여자가 숙소에 도착했다. 젊은 남자와 단둘이 한 방에서 자게 될 줄 알고 내심 이게 웬 떡인가 싶었건만. 

 

우리 셋은 서툰 영어로 밤 늦게까지 웃고 떠들고 놀다가 다음날 아침에 같이 숙소를 나섰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