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 전날과 비슷하게 대략 11시간 동안  29km를 걸었던 이 날의 고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에서 단내가 난다. 로그로뇨에서 나헤라까지 29km를 걷는 동안 중간에 마을이 딱 2개 있다. 로그로뇨에서 13km 떨어진 곳에 있는 나바렛(navarette), 거기서 4km 떨어져 있는 벤토사(ventosa), 그리고 다시 12km를 가야 나헤라(najera)다. 사람도 없고 집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길을 네다섯 시간 동안 묵묵히 걸었고, 잠깐 쉬고 다시 대여섯 시간을 묵묵히 걸어야 했다.

 

첫 일주일은 '도대체 왜 내가 이런 무모한 결심을 했는지'에 대해 숱하게 되물으면서 스스로를 원망했다. 좀 지나고 나니, 자학할 힘도 남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걷고 있었다. 문득문득 '내가 여기 왜 왔지?' '여기서 뭐 하는 거지?'하고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속시원한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아서 이유를 만드는 것을 포기했다. 아니, 실은 '여기 왜 온 건지가 뭐가 중요해? 걸어야 되는 곳에 왔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면 일단 걸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고 수첩에 적혀 있다. 수첩에는 뒤이어 나름 '인생'에 대한 짧은 생각도 적혀 있다. 살짝 고쳐서 써 보자면 대략 아래와 같다.

 

내가 태어난 것도 다 이유가 있겠지. 그 이유는 죽기 전에 알게 될 수도 있고, 죽을 때까지 모를 수도 있다. 남은 여생을 바쳐 아무리 깊이 생각해도 알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존재의 이유'는 일단 살짝 옆으로 밀어 놓자. 여튼 나는 어찌어찌하여 세상에 나왔고, 길 위에서 한발한발 성실하게 발을 떼는 것처럼 일상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무엇을 위해서? '나는 왜 세상에 던져졌나'는 옆으로 밀어 놓는다 치더라도 '그 무엇'에 나를 바칠 것인가 하는 것만큼은 정해져야 한다.

 

 

 

인생의 지향이라고 할 수 있는 그것이 실제로 내 앞에 준비돼 있는 알 수 없는 계획과 사뭇 다를 지라도 말이다. 까미노의 순례자들은 자기에게 허락된 시간 동안 매일 조금씩 산티아고를 향해 나아간다. 내 인생의 산티아고는 어디인가. 

 

까미노 위의 모든 순례자가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산티아고. 모든 살아 있는 자들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음. 어쩌면 무덤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는 같은 질문을 하고 싶다. 나는 어디로 가려고 하고 있나. 왜 진작부터 지쳐버린 지루한 '복기'를 계속하고 있나. 처음에는 3년 전에 길 위에 섰을 때처럼 설레고 벅찼었다. 매일 시간을 내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어렵게 마음 먹은 일이라 초반에 그만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남은 시간들이 어서어서 흘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목적이 실종됐다는 점에서, 지금의 나는 3년 전의 나와 어느 정도 비슷한 속도로 가고 있는 셈이다.

 

 

 

물론, 3년 전 아침에 출발할 때는 그 날 그렇게 생각도 많이 하고 그렇게 고생을 하게 될지도 몰랐다. 숙소 리스트를 카메라에 옮겨 담는 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까미노에 대해 내가 가진 정보라고는 달랑 A4 용지 앞뒤 한 장에 빼곡히 적혀 있는 숙소 리스트 뿐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이 나온다. 나름 저 한 장에 다중적인 정보를 담아 두었다. 34일짜리 코스가 추천하는 마을 리스트와 비행기 안에서 읽은 에세이의 작가가 묵었던 마을 리스트, 가이드북에 소개된 큰 도시 등이 각각 다른 색깔로 표시돼 있다. 음. 저 때도 4색 볼펜을 끔찍히 좋아했었군.

 

 

 

 

아침에 길을 나설 때는 늘 여유가 있다. 푹 쉬었겠다, 배도 채웠겠다 나름 자신 있게 걸음을 뗀다. 아래는 길 여기저기에 다양한 방법으로 표시된 '당신은 지금 산티아고로 가는 길 위에 있소' 메시지. 가야할 곳이 분명하고, 그 곳으로 가는 방법을 여기저기서 친절하게 알려 주는 곳. 여기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로그로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작고 예쁜 호수가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산책길은 한적했다. 내 똑딱이 카메라는 늘 자동 모드로 설정돼 있어서 눈으로 보는 감흥을 다 전달하지 못한다.

 

 

 

 

산책길에 비친 그림자가 신기해서 한 컷. 저런 모양의 그림자는 본 적이 없다. 내가 그간 그림자를 자세히 본 적이 없어서 그랬나? 아니면 동북아시아에서는 해와 지구가 유럽과는 사뭇 다르게 움직여서 그런 건가?

 

 

 

 

 

 

 

비현실적으로 화려한 색깔의 새가 풀섶에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길래 목각 인형인 줄 알았다.

 

 

 

 

이 날은 주로 혼자 걸었다. 이제는 '나 먼저 갈게' 하고 길을 나서는 것이 그전만큼 어색하거나 어렵지 않았다.

 

아침에 숙소를 나서면서 알렉스가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따로 걷다가 무슨 일이 생기거나 하면, 또는 다음에 스페인에 오게 되면 꼭 연락하라고 한다. 아마도 걷는 속도나 거리가 달라서 곧 헤어질 것처럼 느껴졌나 보다. 늘 앞에 가면서 움직이는 화살표 역할을 해 주던 알렉스.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타나 '아끼, 아끼!(여기로, 여기로)' 하면서 손짓해 주던 그와의 인연은 어디까지일까.

 

사진 속의 순례자는 아마도 이 날 길에서 본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길이 이어졌다.

 

 

 

 

철제 담벼락에는 순례자들이 만들어놓은 십자가들이 얼기설기 달려 있었다. 이들은 십자가를 만들어 매달면서 어떤 기도를 올렸을까. 앞뒤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도 얼른 하나 만들어서 달았다. 나의 기도는 '이 십자가가 오래오래 붙어 있게 해 주세요.'

 

 

 

 

여기 어디쯤에 내 십자가를 달았는데.. 어떤 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미안. 

 

 

 

 

마을이 없는 길에는 화살표도 드물다. 아래는 길 위에 스프레이로 뿌려 놓은 화살표.

 

 

 

 

심지어 서너 시간을 사방에 사람도 화살표도 없는 길을 걸었는데, 이때는 길을 가면서도 몹시 불안하다. 그 때의 내게,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일처럼 끔찍한 일은 없다. 포도밭 옆에 꽂힌 나무 막대기가 화살표를 대신하는 게 분명할 거라고 잔뜩 자기 최면을 걸면서 걸었다.

 

 

 

 

 

 

 

그렇다면 앞에 나타난 저 공사장은..? 내가 지금 과연 옳은 길 위에 서 있나 그렇지 않은가가 그날처럼 민감하게 문제가 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뒤돌아 갈 수는 없어서 앞으로 계속 갔더니 흙길이 끝나고 아스팔트 도로가 나왔다. 택시 전화번호가 있는 걸로 봐서 까미노 근처인 것 같았다.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안심이 되었다. 그때 휴대폰이 있었다면 나는 아마도 몹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했을 것 같다. 그 정도로 기진맥진해 있었다.  

 

 

 

 

좀더 걸으니 도로표지판이 보였다. A4 숙소 리스트를 급히 꺼내서 보았다. 일단 뒤로 가지는 않은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나헤라 입구에 들어섰을 때는 정말 무릎이 꺾이는 줄 알았다. 기어가고 싶을 지경이었다. 매일 20~23km씩 걷다가 전날 28km를 걸은 데 이어 연속으로 29km를 걸었기 때문이었다.   

 

 

 

 

 

 

 

나헤라에서 묵었던 알베르게다. 간판을 봤을 때는 너무너무 반가워서 울고 싶었다. 숙소에 들어가니 서양 남자와 동양 여자가 음식을 먹고 있었다. 여자는 한국인이었다. 같이 먹지 않겠느냐고 권했던 것 같은데, 음식도 먹고 싶지 않을 만큼 지쳐 있어서 거절했다.

 

이 알베르게는 겉보기보다 굉장히 컸다. 남녀 순례자들 방이 따로 있는, 유래 없는 곳이었다.

 

 

 

 

씻고 좀 쉬다가 레스토랑에 나가서 '그 날의 메뉴'를 먹었다. 샐러드와 메인(스테이크 또는 파스타), 그리고 와인 한병이 8.5유로였다.  

 

 

 

 

 

 

이날 나는, 죽을 만큼 고생하긴 했지만 나름 뿌듯했었나 보다. 한계에 대한 생각이 수첩에 적혀 있다.

 

'그건 될 거다, 안 될 거다 하고 임의로 한계를 정하지 말자. 발이 알아서 할 일이다.'

 

 

 

해보지도 않고 '될 거다, 안 될 거다' 미리 판단하는 건 옳지 않다. 그래서 나는 그냥 '하고 싶다, 하기 싫다'로 판단한다. 가끔씩 신비스러운 비논리가 작용하기는 하지만.

 

인생의 지향에 대한 생각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머리 속을 맴돌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걷는 동안 '왜 태어났을까'에 대한 나름의 답도 찾을 수 있었다. 최근 2-3일은, 내가 이걸 왜 시작해 가지고 매일 스트레스를 받고 있나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기 보다는, 음... 지루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계속 쓰다 보면 또 뭔가 이유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이유 없는 무덤은 없다. 그 이유를 내 이유로 무리하게 끌어와서 갖다 붙이지 않도록 조심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때마침 라디오(신지혜의 영화음악)에서 나오는 이 노래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에 나오는 way back into love.

 

아마도 지금 나는 사랑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인가 보다, 하고 갖다 붙이지 말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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